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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이슈 미술의 세계

파리서 피카소·마티스와 교류한 韓추상화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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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피난민`


사람들이 복잡한 미로 속에 갇혀 우왕좌왕 대혼돈에 빠진 것 같다.

한국 추상화 선구자인 남관(1911~1990)의 1957년작 '피난민'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담은 작품이다. 해군종군화가단으로 참전했던 그는 참혹한 실상을 목격하고 그려야 했다.

1955년 44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되려고 파리로 간 그의 붓은 왜 아픈 과거로 거슬러 갔을까. 피폐한 파리 생활이 피난민과 다를게 없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남관이 건네준 거액을 받고 매달 송금을 약속했던 사람이 도주하는 바람에 감자만 먹으면서 작업해야 했다.

그는 굶주림과 싸우면서 녹슬고 이끼가 낀 폐허를 그려나갔다. 물감을 뿌리기도 하고 캔버스를 아이처럼 껴안고 붓질을 했다.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추상화이지만 고통과 황폐함이 절절하게 전해온다. 오랜 비바람에 풍식된 고대유물과 유적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생전에 작가는 "내 그림의 모티브는 자주 전쟁의 기억에서 온다. 벌판에 쓰러진 젊은 병사의 얼굴, 토막 나뒹구는 팔다리, 시체 위로 쏟아지는 햇볕, 전란으로 우왕좌왕하는 군중의 모습…얼굴, 얼굴들을 나는 길 가다가 땅 위에 구르는 이끼 낀 돌 위에서도 보고 고궁의 퇴색한 돌담에서도 본다"며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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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 작가 [사진 제공 = 현대화랑]


캔버스를 앞에 둔 처철한 사투가 프랑스 화단의 시선을 끌었다. 한국인 최초로 1958년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조르주 블라크 등이 전시한 '살롱 드 메(Salon de Mai)'에 초대됐다. '5월의 전시'라는 뜻으로 전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술제다.

남관은 1966년 피카소, 장 뒤 뷔페, 안토니 타피에스 등 쟁쟁한 거장들이 참가한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아 일약 스타가 됐다. 당시 수상작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은 이탈리아 트리노미술관에 소장됐다.

한국 미술 경매 최고가 기록을 가지고 있는 김환기(1913~1974)보다 앞서 한국 추상화 길을 열었지만 저평가된 그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프랑스로 건너간 1955년부터 세상을 떠난 1990년까지 작품 60여 점을 걸었다.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은 1972년 추상화를 두고 '이것도 그림이냐'고 폄하하던 시절에 남관 개인전을 연 이후 4회 전시를 개최했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 현대화랑의 첫 추상화 전시이기도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외아들 남윤은 "완고하고 타협이 없었던 아버지의 모든 생활 자체가 작업이었다.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일어나 그림을 그릴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동양과 서양을 융화한 세계'를 선사하는 추상화가로 성공을 거둔 후 1968년 금의환향한 남관의 화폭이 밝아졌다. 파리 하늘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몽환적인 푸른 색조를 사용했다. '내 마음에 비친 상들' '어떤 환상' '방랑자의 꿈' '소녀의 꿈' '삐에로의 꿈' 등의 제목도 몽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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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 (199×298㎝). [사진 제공 = 현대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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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콜라주와 화면에 붙인 재료를 떼어내 그 부분에 다시 색을 칠하는 데콜라주 기법을 통해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완성했다.

남관 회화의 핵심적 조형 언어로 꼽히는 얼굴 이미지, 사람을 닮은 상형문자 등 다양한 실험 결과물도 만개했다. 유적에서 따온 문자가 그림 속의 화자(話者)가 되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붉은 눈을 지닌 장승처럼 우뚝 선 문자가 있는가 하면,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는 인간 군상 같은 작품도 눈에 띈다.

평론가 이구열은 이러한 작업에 대해 "콜라주 형상들은 작품에 따라 일종의 문자성과 기호성, 그 밖에 신비한 물상의 형태로 구체성을 갖게 함으로써 헤아릴 수 없이 내밀한 표상미를 조성시켰다"고 평했다.

전시는 30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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