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토론·술자리가 장수 비결
101호부터 3기 편집위원 체제로
‘페미니즘 흐름’ 반영 늘어날 듯
‘문화/과학’ 창간호(왼쪽)와 100호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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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문화이론지 ‘문화/과학’이 2019년 겨울호로 100호를 맞는다. 최근 잡지 폐간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실천적 지식인들이 일군 값진 성과다.
‘문화/과학’은 100호를 끝으로 제2기 편집위원회가 종료되고, 3기 편집위원회 체제로 전환한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100호 발간에 맞춰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1기 편집인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학장과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기 편집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3기 공동편집인을 맡은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박현선 서강대 HK연구교수가 한자리에 모여 ‘문화/과학’의 지난 28년 동안의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했다.
“우리가 ‘문화과학’의 이름으로 진보의 기획에 동참하는 것은 문화가 전에 없이 중요한 계급투쟁의 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계간 ‘문화/과학’은 1992년 창간호 ‘과학적 문화론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이데올로기와 욕망’(30호), ‘페미니즘 2.0’(83호), ‘인류세’(97호) 등 혁신적이고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문제 제기를 통해 사회적 담론을 주도했다.
강내희 학장은 ‘문화/과학’의 장수 비결로 ‘심포지엄’을 꼽았다. 고대 그리스적 의미대로 12시간씩 이어진 술자리와 토론이 치열한 논의의 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운동으로서 이론적 실천”을 추구한 연구자들의 헌신은 30년 가까이 잡지를 이어가게 했다. 강 학장 부인인 손자희 전 발행인이 70호까지 교열·편집·제작·유통을 무임금 노동으로 감당했고, 정규직 교수들은 원고료를 받지 않고 기금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문화/과학’은 이론에만 머물지 않았다. ‘문화연대’ ‘지식순환협동조합’ 설립 등 현장 운동 실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심광현 교수는 “문지, 창비, 황해문화 등 여러 잡지가 있지만, 이론과 운동을 병행한다는 점에서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것”이라며 “한국의 압축성장이 만들어낸 모순을 횡단하려다 보니 독특한 성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100호 주제는 ‘인간의 미래’다. 심광현 교수는 “‘문화/과학’은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운동은 해체되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하던 역사의 한 순환이 끝나는 시점에 창간됐다”며 “현재는 브렉시트, 미·중 무역전쟁 등 신자유주의 체제의 해체 과정에 접어드는 새로운 순환을 맞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는 과제가 놓인 셈이다.
101호부터 시작되는 3기 체제에선 편집위원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 박현선 교수는 “편집위원 24명 중 여성이 11명으로 늘었고, ‘미투’ 등 페미니즘 운동 흐름이 더욱 가시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광석 교수는 “기존 문화사회라는 키워드와 함께 인간과 기술, 기후위기, 공생 등 다른 삶에 대한 주제들을 탐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3기 편집위원은 몇몇 교수를 빼고 대부분 비정규직 연구자들인데, 한국 연구자 생태계의 적나라한 모습”이라며 “인문사회 연구공동체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30일 서강대에서 ‘문화/과학’ 100호 발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린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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