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고려대서 남북 공동조사 성과 돌아보는 학술대회
사진으로 보는 남북공동발굴 사업 과정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려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滿月臺)에서 제2의 정전(正殿·중심이 되는 건물)으로 거론되는 건덕전(乾德殿) 위치를 남북 공동조사가 진행 중인 서부건축군 가장 앞쪽의 독립건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창근 박사는 15일 고려대 국제관에서 열리는 '고려 도성 개경 궁성 만월대' 학술심포지엄 발표자로 나서서 만월대 주요 전각 위치를 재검토한 결과를 공개한다.
건덕전은 고려 인종 16년(1138)에 대관전(大觀殿)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서긍(徐兢)이 1123년 고려를 방문한 뒤 집필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회경전 북서쪽에 건덕전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학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서부건축군 앞쪽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건물을 건덕전으로 추정했다. 이 건물터는 만월대 제1의 정전인 회경전 안쪽 장화전의 서쪽에 있다.
남창근 박사가 추정한 만월대 건물터 위치 |
남 박사는 14일 배포된 발제문에서 기존에 알려진 건덕전터는 정전으로 간주하기에는 면적이 지나치게 좁다고 지적하고, 서부건축군 앞에 존재하는 이른바 '대형건물터'가 건덕전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건물터는 회경전 북서쪽이 아닌 서쪽에 존재한다.
그는 "지금까지는 단편적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학자마다 건덕전 위치에 관한 의견이 달랐다"며 "고려도경이 언급한 건물명 중에는 잘못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방위도 불명확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덕전은 정전으로서의 상징성과 위용을 드러내야 하고, 즉위식이나 군사 사열 같은 행사를 진행한 곳이어서 넓고 평평한 대지가 있어야 했을 것"이라며 "대형건물터는 정면 7칸·측면 4칸으로 서부건축군에서 확인된 건물 유적 중에는 가장 크고, 앞쪽에 넓고 평평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잔존한 석조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의 치석(治石) 기법이 서부건축군 내 건물터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회경전과 버금간다"고 덧붙였다.
남 박사는 "건덕전 북쪽으로 편전과 침전이 있었고, 임천각터로 알려진 건물터는 선정전(선인전)터일 가능성이 있다"며 "서부건축군과 중심건축군 사이에는 두 영역의 서비스 공간이자 완충 공간으로 보이는 부속 전각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개성 만월대 출토 금속활자 복제품 |
심포지엄에서는 이외에도 만월대 발굴조사 성과와 과제, 고려 개경 문화유산과 보존정책의 변화 과정, 고려 개경 도성 구조와 궁성, 만월대 출토 청자 유형과 특징, 만월대 출토 금속활자 가치에 대한 발표가 진행된다.
유부현 대진대 교수는 만월대에서 2000년대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찾은 금속활자 5점에 대해 "국가가 주도해 만든 최고 수준의 활자로, 고려 금속활자 연구의 시금석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은경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만월대 조사 과제로 지속적 발굴과 공동보고서 발간,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꼽았다.
조 연구관은 "학술조사 연구 관점에서 보면 개성 만월대 조사는 아직 출발선 위에 있는 듯하다"며 "유물과 유구 확인에서 시작된 남북 공동조사는 이제 유적의 가치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가라는 한 단계 진전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고려사학회가 공동 개최하며, 오는 28일까지 덕수궁 선원전터에서 이어지는 기획전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과 연계해 마련됐다.
만월대 남북 공동조사는 2007년 시작해 지난해까지 8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만월대 전체 면적 25만㎡의 약 14%인 서부건축군을 조사 중이다. 지금까지 서부건축군 3만3천㎡ 중 1만9천770㎡에 대한 조사가 완료됐고, 이를 통해 건물터 40여 동과 유물 1만7천900여점이 확인됐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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