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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슈 미술의 세계

어디에 머무를지 알지 못하는 조각가 김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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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미술기행-29] 좀 느닷없었다. 왜 멧돼지일까? 최근 끝난 마니프 전시에서 벽면 가득 선반에 돼지들이 있었다. 조각가 김경원의 설명은 간단하다. 힘돼지! 작가는 한국적인 돼지 원형을 살리고 싶었다. 우리가 먹거나 보는 복돼지나 꽃돼지 형상이 아니라 민화나 신라시대 12지신 비석상에서 본 도상들은 멧돼지처럼 힘 있고 거칠었다. 저력 있고 힘찬 조금은 얼빵하고 유머러스한 우리 돼지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기를 바란다. 황금돼지해 서막에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선보였다.

매일경제

김경원작 힘돼지 45.5×30.5×55테라코타(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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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경원은 2010년 늦여름께 만난 듯하다. 작가들은 나와 같은 갤러리스트들을 만나면 자신을 소개하기에 바쁘다. 김경원은 자신의 지인 작가를 소개했다. 이 작가는 화실을 운영했다. 강남 영동고등학교 건너편과 강남구청역 인근은 화실이 넘쳐났다. 미술대학이 실기시험으로 당락이 날 때 이 거리는 융성했으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쉽지 않다.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한 모 유명 작가는 청년 시절, 이곳 화실을 경영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서울 근교에 작업실도 마련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틀을 잡았다. 김경원 지인은 그런 축에 들지 못했다. 그해 7월 서양화가 고 김무영, 김은기 2인전을 주관했다.

이후 엉뚱하게 김경원의 전시를 보았다. 명동성당 갤러리에서다. 토우(土偶) 작품들이었다. 대학 시절 문화유산 답사에 따라나섰다. 폐사지(廢寺址)인 여주 고달사터에서 석재 조각물들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 토우를 만났다. 대부분 여성상인 토우는 얼굴의 세부 표현은 알아보기 힘들고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과장한 나체상이 많았다. 경주 남산의 마애불에는 여성상이 있다. 이후 수천 년 전 한국인의 원형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경주. 석재로 된 비석을 받치는 귀부(龜趺)에 눈이 쌓여갔다. 경주 삼릉에 작업실 가진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은 눈이 오면 미친 듯이 불국사로 달려갔다. 불과 10여 분 내리는 눈을 본 감성을 모티프로 일필휘지로 1000호 대작을 완성하지 않았나. 조각가 김경원은 귀부에 스며들듯이 녹아 들어가는 눈이 온기가 되어 마치 거북이가 되살아나 1000년 동안 등에 지고 있던 비석을 내던지고 걸어가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신라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귀부는 거북 모양의 돌비석 받침돌이다. 부여 정림사지 터에서는 전통적인 석조 작품들을 보았다.

또 다른 폐사지인 서산 보원사지 인근 사는 할매의 얼굴은 그곳 민불(民佛)을 닮았다. 그러한 느낌을 자신이 배운 동양화로 표현해 보았으나 회화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 흙에서 온 작은 토우를 사람처럼 만나기 위해 사진 찍고, 사람 크기로 장지에 프린트했다. 토우를 만드는 과정에서 손맛을 보았고, 테라코타 방식으로 구워냈다. 밑그림 없이 하는 작업 과정은 자신이 배웠던 동양화와 같은 조형 언어였다. 어느 날 토우가 흙사람이 되어 작업실 문을 열고 걸어 나와 작가 앞에 선 듯한 모습에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바빴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얘기할 틈도 없었던 듯하다. 작가 생활을 지속할지가 의문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강남의 작은 병원 부속 전시장에서 작품들을 다시 만났다. 작품 '윤조'는 청소년기 딸아이를 형상화했다. 인물을 표현한 두상의 이미지는 강력했다. 회화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인간의 수십 년 삶의 미래를 그려낼 수 없지만, 조각으로만 독특한 아우라를 표출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는 걸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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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작 윤조 31×18×49 테라코타(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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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은 부모가 슬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를 감싸안았으나 둘째와 손자를 잃고 다리를 모은 채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는 듯한, 독일 여성 작가 케테 콜비츠가 현현(顯現)한 듯한 작은 작품을 주며, 그 어미에게 갖다주라고 했다. 밤에 아비를 만나 그 작품을 주었다. 박스에 든 작품은 너무 작고 가벼워 발걸음에 흔들거렸다.

김경원은 바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삶의 흔적을 스스로 토해냈다. 직업은 학교 선생님이자 작가다. 대학에서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토우와 도자기를 만들고, 나무를 깎고, 스티로폼을 조각하고, FRP로 조형물을 만들어 설치하기도 한다. 인물을 회화로 표현하고 각종 재질의 조각으로 표현하면서 동양화의 분채처럼 조각 표면을 중첩된 색으로도 표현해 보기도 한다. 계속 배워나가면서 작업을 한다. 작업 장비들은 점점 늘어나 어느새 달팽이처럼 짊어지고 다니는 짐이 되었다.

변화나 불확실한 미래는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다. 작품 '여명'에서 열린 문으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지만 아이는 엄마 뒤로 숨는다. 집에서 기르는 개는 아이 뒤로 꼬리를 감춘다. 엄마는 아이를 단속하면서 미지의 상황을 향해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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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 작 여명150×85 ×213 혼합재료(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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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든 관객이든, 원본과 복제본 사이의 차이가 사라진 인터넷으로 연결된 클라우드 시스템 안 '비트 세계(bit world)'의 현실에 살고 있다. 김경원은 테라코타 원본과 그 원본으로 찍어낸 수십 개의 세라믹 작품들 어디에 자신이 투영되었을까를 고민한다.

김경원은 작품을 하는 내내 늘 새로운 옷을 걸쳐보는 재미에 마음을 빼앗겨 왔다. 경기도 양평에 온존한 자기만의 작업실을 마련한 작가는 또 새로운 작품세계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어디에 머무를지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듯하다.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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