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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이슈 미술의 세계

시주한 사람 얼굴 새긴 `못난이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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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의 자취-15] 2013년 10월 28일부터 2014년 2월 23일까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메트)에서는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이 성대하게 펼쳐졌다. 메트 특별전시실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한국 미술전인 동시에 '신라'를 주제로 서구에서 열리는 첫 기획전이었다.

그런 만큼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국보 제191호 황남대총 북분 금관, 국보 제90호 부부총 금귀걸이, 국보 제79호 금제여래좌상, 보물 제635호 계림로보검 등 대한민국 '간판급 문화재'가 총출동했다. 메트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은 이를 포함해 국보 9점, 보물 12점 등 93건을 비롯해 총 132점에 달했다.

하지만 이 매머드 전시회에서 이들 문화재를 제쳐두고 정작 현지인들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충남 서산 보원사 터에서 수습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철조여래좌상이었다. 보원사 철조여래좌상으로 주로 불린다. 드물게 쇠로 만들어진 이 불상은 국보도 보물도 아니어서 더더욱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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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서산 보원사 터에서 수습된 것으로 전해지는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최전성기인 8세 중반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예술성과 기교면에서 철불 중 최고 수작으로 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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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사학자 등 그곳 전문가들은 이 불상을 접한 소감으로 "금동불(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에서 느낄 수 없는 장엄미가 일품"이라고 감탄했다. 이들은 "어둡고 거친 느낌의 철 재질과 고도의 조각 기법은 서양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던 가수 싸이도 소식을 듣고 메트를 방문해 이 철불 앞에서 사진을 찍고는 트위터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높이 1.5m인 보원사 철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불인 동시에 넉넉한 얼굴 표정, 사실적인 천의 주름 표현 등으로 철불 중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주조기술을 자랑하는 '수작 중 수작'이다. 이미 오래전에 국보 반열에 올랐어야 마땅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어 지금까지도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것이다.

보원사는 출토된 유물을 근거로 6세기께 창건된 것으로 분석하며 고려 초 국사이던 탄문(900∼975)이 이 절에서 입적했다는 '법인국사보승탑비' 명문은 이 시기 사찰 사세가 매우 컸음을 보여준다. 보원사는 하지만 임진왜란 전후로 폐사됐다. 보원사 철조여래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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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보원사 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철조불좌상. 얼굴을 찡그리는 형상을 하고 있어 `못난이 불상`으로 주로 불린다. 2.59m의 거대불상으로, 옆에 선 관람객들이 작게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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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불교조각실에 자리 잡고 있는 철조불좌상도 보원사 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국보, 보물 등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다. 보원사 철조불좌상은 높이가 2.59m로, 석굴암 본존불만큼 거대한 불상이다. 몸통에 비해 큰 머리 등 이상적 비례미를 탈피해 개성과 인간미가 넘친다. 특이하게도 얼굴을 찡그리는 형상을 하고 있어 '못난이 불상'으로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8세기를 전후한 통일신라시대에 오면 불상 제작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종전의 구리를 대신해 '철'이라는 전혀 새로운 재료를 이용해 불상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쇠로 불상을 주조하는 방식은 9세기 중반 이후 통일신라 말기에 크게 유행했으며 고려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제작됐다.

철은 구리보다 구하기는 쉬운 반면 재료를 가공하기 힘들어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야 한다. 당시엔 용광로가 없어 쇠를 여러 개 도가니에 넣어 1200도 이상 온도로 녹인 뒤 동시다발로 부어 주조했다. 중간에 멈췄다 다시 부으면 불상이 깨지기 십상이었다. 이런 제약으로 인해 철불은 중국에서도 후대인 12세기 송나라 때 주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는 이보다도 훨씬 늦은 13세기 가마쿠라(鎌倉) 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등장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중앙에 철불을 제조하는 조직적인 장인 집단이 존재했으며 부유한 지방 호족들이 이들을 자신들 지역으로 초청해 불상을 만들게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철불 얼굴은 전형적인 금동불 형태를 벗어나 인상이 모두 제각각이면서 개성적이다. 이 때문에 돈을 시주한 공양자 얼굴을 불상에 담았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철불은 특징적으로 가슴과 배에 돌출된 접합선을 갖고 있다. 불상 주조 과정에서 용철이 바깥틀 이음 부위 사이로 배어 나와 생긴 선이다. 철보다 더 단단한 끌이나 정 등 도구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아 주조 시 생긴 흔적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이처럼 공정이 어렵다 보니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손 부분은 나무로 조각해 붙이기도 했다. 주조물 위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혀 불상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가장 뛰어난 철불인 보원사 철조여래좌상은 여러 철불 가운데 제작 시기도 제일 앞선다. 불교 조각은 국보 제24호 석굴암 석가모니불(본존불)이 탄생한 8세기 중반 통일신라시대를 정점으로 예술적으로나 기교적으로 퇴보해 형식화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보원사 철조여래좌상은 불교문화의 전성기 흔적을 잘 간직하고 있는 불상이다. 생동감 넘치는 얼굴 표현, 유려하고 사실적인 옷 주름 조각 등 제작 수법이 석굴암 본존불 등 최전성기 불상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보원사 철조여래좌상 제작 시기를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8세기 중엽으로 비정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전인 8세기 초부터 철불이 조성됐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철불이 생산되기 시작한 시기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해 국내 불교 조각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적어도 400~500년 앞서서 철불을 광범위하게 생산했던 셈이다. 당시 우리나라 철 주조 기술이 동양 최고였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보원사 철조여래좌상 외에 현존하는 대부분 철불은 9세기 이후에 제조됐다. 국보로 지정된 철불은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제58호),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등 총 3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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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63호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철불은 얼굴이 제각각이고 개성과 인간미가 넘친다. 돈을 낸 공양자의 얼굴을 불상에 새겨넣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도피안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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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3점 중에서는 국보 제63호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작품성이 제일 뛰어나다. 능숙한 조형 수법과 알맞은 신체 비례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 전통이 엿보이는 뛰어난 조각이다. 갸름한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을 풍긴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만들었다는 글이 남아 있어서 만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도 있다.

풍수설을 처음 도입한 도선대사(827∼898)가 도피안사를 865년 창건하면서 함께 조성한 불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손 모양(수인)인 왼손 검지를 펴서 오른손으로 감싸 쥔 비로자나불의 전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른손은 부처의 세계,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낸다.

국보 제58호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은 얼굴이 둥글고 단아하며 신체가 건장하고 당당하다. 다만 양감이 풍부하지 않고 탄력적인 부피감도 줄어들어 9세기 후반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약사여래는 한손에 약병 또는 보주(보배구슬)를 들고 있다.

국보 제117호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오똑한 콧날, 굳게 다문 입 등에서 위엄이 느껴지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추상화된 모습을 하고 있다.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858) 진골 귀족인 김수종이 시주해 불상을 만들었다는 글이 적혀 있어 정확한 조성 연대가 확인되는 불상이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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