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
요나하라 케이 지음, 임경택 옮김/사계절(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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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이 또 불탔다. 화마에 휩싸인 성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매년 40만 명에 이르는 한국인들이 오키나와를 방문한다는데 나는 아직 한 번도 오키나와에 가본 적이 없고, 슈리성을 본 적도 없지만 그 눈물에 배어 있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직접 만나본 유일한 ‘우치난추’(오키나와 사람) 가와미쓰 신이치 선생을 떠올렸다.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오키나와에서 말한다: 복귀운동 후 40년의 궤적과 동아시아>라는 책을 통해서였지만, 실제로 뵙게 된 것은 2018년에 있었던 <황해문화> 100호 발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 ‘통일과 평화 사이, ‘황해’에서 말한다’에 발표자로 모신 덕분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운동가는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담배도 ‘피스’(Peace)만 태우신다며 내게 담배를 권했고, 언젠가 오키나와에 오게 되면 함께 ‘아와모리’를 마시자고 말씀하셨다. 내가 ‘길 위의 독서’ 칼럼 연재에서 아시아를 다룬 책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도 선생을 두고 벌어진 작은 사건 때문이었다. 심포지엄에 참가한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휴식 시간에 느닷없이 선생을 찾아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일본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라고 따지는 일이 있었다.
오키나와의 문화와 예술을 연구한 가마쿠라 요시타로를 중심으로 근대 오키나와 사람들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 책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에는 1980년대 슈리성 복원작업에 참여했던 다카라 구라요시 류큐대학 명예교수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추천사의 첫 문장은 “오키나와는 일본을 구성하는 47개의 광역자치단체(현) 중의 하나이지만 다른 46개 지역과는 다른,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라고 시작한다. 오키나와는 15세기부터 약 500년간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로 발전해왔던 류큐 왕국이 1879년 일본에 강제병합되면서 생긴 행정명이다. 이후 행정제도와 언어를 비롯한 많은 측면에서 일본화가 진행되었고, 과거 왕국의 번영을 상징하던 슈리성은 다이쇼(1912~1926) 말기에 철거될 뻔한 위기를 겪었다.
당시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던 가마쿠라 요시타로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철거 저지를 위해 노력했고, 그 덕분에 슈리성은 사라질 뻔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의 불길은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버리는 돌로 전락한 오키나와를 피바다로 만들었고, 일본군 사령부가 있었던 슈리성은 미군 폭격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폐허가 된 슈리성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가마쿠라 요시타로가 16년에 걸쳐 진행한 현지조사를 통해 축적한 방대한 자료 덕분이었다.
그러나 왕국의 멸망과 전쟁의 아픔, 화재 속에서도 슈리성이 복원될 수 있었던 진정한 원인은 수많은 오키나와‧류큐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스스로 전통과 독자성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지난 1992년 슈리성이 다시 세워질 수 있었고, 그것이 이번에 불탄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스스로 ‘야마톤추’(일본인)라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때 우리도 그들과 같았음을….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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