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티머시 스나이더│456쪽│부키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자유민주주의는 인류 마지막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졌다. 소비에트연방(옛 소련) 해체와 동유럽 국가들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누구도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했고 권위주의가 되살아났다. 서구권에서는 경제성장 둔화와 양극화 속에서 갈등과 혐오가 자라났다. 세계 도처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허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전작 ‘20세기를 생각한다’ ‘폭정’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했던 역사학자인 저자가 이번에는 세계로 확산하는 ‘신권위주의’ 광풍을 조명한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신권위주의의 확산 배경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부터 2016년 브렉시트, 2016년 도덜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를 중심에 놓고 권위주의의 부활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를 흔드는 러시아의 공작과 이에 휘둘리는 미국의 모습을 그리는 데 공을 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과정에서의 러시아 연계 가능성에 대한 모든 의혹을 ‘날조’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저자는 트럼프와 러시아의 관계를 증명하는 수많은 정황을 제시하며 “미국의 주권이 가시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에서 신권위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저자는 ‘필연의 정치학’과 ‘영원의 정치학’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대중은 민주주의 승리로 당연히 참여·번영이 증대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이란 근거 없는 확신(필연의 정치학)에 빠져 있으며, 영광스러운 과거에 대한 갈망·동경(영원의 정치학)을 이용하려는 자들에게 너무 쉽게 이끌리고 만다는 것이다.
책이 러시아의 개입과 트럼프 당선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만, 사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다. 저자는 “오늘날처럼 정교한 가짜뉴스가 사방에서 몰아치며, 현재의 불평등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엄습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로 가장한 권위주의에 이끌리기 쉽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사회는 진보하고 번영은 계속된다’는 믿음 때문에 권위주의에 현혹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적인 파시즘, 정의로운 포퓰리스트 등 권위주의는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온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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