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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홍콩 시위 지지하는 사람들 “청년들 주거·일자리 손놓은 정치권에 분노…홍콩과 한국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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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현장 심각성 알리려 헬멧·방독면 쓰고 매주 시위

민주화 원하는 홍콩 청년들

“한국 시민들 지지와 관심을”

경향신문

대학원생 황민주씨(41·가명)는 지난 8월 중순 학회에 참석하려고 홍콩에 갔다. 당시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지 몰랐다. 반쯤은 놀러 간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시위 현장에 들렀다. 시민 170만명이 모여 홍콩의 정치적 자유를 외쳤다. 시민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인간 사슬’을 만들었다.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 전주 한 여성 참가자가 경찰이 쏜 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다. 황씨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져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이상현씨(33·사진)는 2017년 9월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한국 청년들이 주거 지역에서 밀려나는 문제를 다루는 행사를 기획했다. 행사에서 홍콩 활동가들을 만났다. 홍콩 청년들도 한국처럼 주거 문제를 겪었다. 여러 나라 청년들과 사회 문제를 두고 연대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지난 7월 홍콩 활동가들로부터 시위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홍콩에 갔다. 그는 시위대와 함께 입법회를 점거했다. 경찰은 장총을 등에 메고 있었다. 한국 시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위협감이 몰려왔다.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홍콩인들의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시위가 장기화될 거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씨는 지난 8월 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단체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 행동’을 만들었다. 이씨와 황씨는 매주 일요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앞에서 홍콩 정부의 국가폭력을 반대하고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시위에 참여한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시위를 마치고 온 참가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노란 헬멧과 방독면, 고글, 검은 마스크, ‘광복홍콩 시대혁명’ 등이라 적힌 팻말을 들고 왔다. 헬멧과 방독면을 쓰고 시위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씨는 “홍콩 시위 현장을 기억하고 그 심각함을 알리는 차원”이라고 했다.

유학 온 홍콩 청년들도 참여했다. 토비 원(19)은 9월 한국에 왔다. “초등생 때 선생님들이 ‘홍콩 광둥어를 쓰지 말고 중국 베이징어를 쓰라’고 했어요.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 광둥어를 쓰는데 왜 학교에서는 베이징어를 써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홍콩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없을 것 같다고 느꼈죠.” 다른 나라에서 살기를 꿈꿨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한국을 택했다. 한 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의 시위도 방해받았다. 일부 중국 관광객들이 시위대 주변에서 “홍콩은 중국의 일부다”를 외쳤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스마트폰에 띄운 채 중국 국가를 불렀다. 연세대 학생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며 이달 초 학내에 내건 두 개의 현수막은 지난 5일 철거됐다.

시위 참가자들은 민주화를 향한 시민의 열망과 행동을 두고 홍콩과 한국이 닮았다고 했다.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8월 중순 홍콩 시위에 가보니 젊은층도 많고 아기를 안고 온 어머니도 있었다. 한국 촛불집회와 똑같았다”고 했다.

한국과 홍콩 청년들은 주거 문제를 겪는다. 주디 탐(24)은 “홍콩에서 (한국의) 고시원 크기 방을 빌리려면 한 달에 8000홍콩달러(약 118만원)가 든다”고 했다. 에드워드 체(25)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첫 집을 사려면 20년이 걸린다”고 했다.

정치권은 양국 청년의 민의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이씨가 말했다. “양국은 일자리가 많지 않고 물가가 비싸며 주거 공간이 좁아요. 정부나 정치인들은 의지를 보이지 않죠. 한국 청년들은 ‘헬조선’이라며 사회가 안 바뀔 거라고 보잖아요. 홍콩의 모습도 다르지 않아요.”

참가자들은 복면금지법이 폐지돼 홍콩 시민들이 요구사항을 거리에서 자유롭게 외치길 바란다. 경찰 폭력이 사라지길 원한다. 주거권·고물가 등 민생 문제를 해결할 민주 정부도 원한다. 홍콩 청년들은 한국 시민들의 지지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탐은 말했다. “한국 시민들이 홍콩 시위 뉴스를 온라인에 공유해주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에요. 한 명의 시민이라도 이렇게 해준다면 더 바랄 것은 없을 거예요.”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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