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대 은행 신용대출 1.7조 급증
주택대출 조이자, 현실화 한 '풍선효과'
자영업대출 폭증…월 증가액 2조 넘어
"침체 직격탄…연체차주 비율 오를듯"
(그래픽=김다은 기자) |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대출 연체율이 오르고 있어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돈이 원활하게 안 돌고 있다는 건데, 당분간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해야지 싶습니다.”
국내 한 시중은행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은행권 전반의 위기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기 침체의 폭이 전례 없이 크다는 게 그 이유다. 이 인사는 “특히 지방부터 경기가 가라앉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내년 경영 환경은 만만치 않아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좀비기업 급증, 하루가 멀다 하고 문 닫는 자영업대출 증가, 높은 변동금리로 외부 위험에 약한 신용대출 급증 등은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관측이다.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월 1.7조원↑
금융 안정을 위협할 ‘약한 고리’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최근 신용대출과 자영업대출의 증가 폭이 커진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에서만 자영업대출이 2조원 넘게 늘었다. ‘금융 혈맥’ 은행이 건전성 강화로 몸을 움츠리면 돈맥경화 현상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이데일리가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대출 현황을 살펴보니, 지난달 한 달새 5대 은행의 개인신용대출은 1조6894억원 증가했다. 전달인 9월(5111억원) 대비 세 배 넘게 급증한 것이다. 최근 몇 달 신용대출은 6월 5586억원→7월 1조1875억원→8월 1조6479억원→9월 5111억원→10월 1조6894억원으로 늘었다.
신용대출 급증은 금융당국 규제와 직결돼 있다.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40%로 낮추자, 집값 부족분을 신용대출로 벌충하는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한 시중은행 창구 관계자는 “요즘 부동산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며 “신용대출을 최대한 받아 집을 사려는 수요가 많아졌다”고 했다. 대출 규제의 ‘풍선효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가계대출의 질이 나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용대출은 전형적인 변동금리 단기대출이다. 예상치 못하게 출렁이는 시장 변동성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담보가 없어 상대적으로 금리도 높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주요 은행의 신용대출금리 평균은 3% 중후반대다. 지방은행의 경우 4~5%대다. 금융권 고위인사는 “현 정부 들어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정 정부보다 낮아졌지만 그 풍선효과로 신용대출은 한때 15% 가까이(전년 동기 대비) 급증했다”며 “대출의 질을 다시 따져봐야 할 때”라고 했다.
◇일부 지방銀 자영업대출 금리 6%↑
자영업대출의 폭증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달 5대 은행의 자영업대출은 2조264억원 늘었다. 최근 몇 달 자영업대출 증가액은 6월 1조3924억원→7월 1조8329억원→8월 1조9705억원→9월 1조5994억원→10월 2조264억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올해 2분기 도·소매업의 은행 대출 증가율은 7.5%로 2011년 4분기(7.7%) 이후 7년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소매업은 대표적인 생활밀착형 자영업이다. 자영업 종사자 수 기준으로 전체의 27.6%(2017년)에 달한다.
이는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이 은행 대출을 줄이는 것과 대조된다. 이를테면 KB국민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15조5313억원으로 지난해 말(18조2464억원)과 비교해 10개월 만에 2조7151억원 급감했다.
문제는 자영업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다. 신용평가사 KCB의 산출 수치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대출의 연체차주 비율(연체 대출 고객 수/전체 대출 고객 수)은 1.54%로 나왔다. 전년(1.33%) 대비 0.21%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침체의 골이 깊어진 올해는 연체차주 비율이 추가 상승했을 것으로 점쳐진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영업 과밀화로 새로 문을 연 자영업자의 실패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며 “대출 부실화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자영업대출은 금리 측면에서도 위험이 작지 않다. 현재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자영업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각각 4.75%, 4.77%다. 가계대출보다 높다. 우리은행(4.74%), KEB하나은행(4.65%), NH농협은행(4.61%) 등도 마찬가지다. 일부 지방은행의 경우 6%가 넘는 경우(전북은행 6.59%)도 있다.
또다른 시중은행 임원은 “자영업대출 연체율의 절대적인 수치는 아직은 낮은 편”이라면서도 “대내외 경기를 예측하기 어려워 내년에는 더 철저하게 관리하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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