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소비자물가 0%…"최근 저물가, 통화정책 대응 어려워"
"중앙은행이 과거에 비해 물가 움직임에 대응하기 어려워지는 난관에 직면해 있다."
지난 6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설명회에서 이처럼 토로했다. 기술의 발달과 글로벌 경제의 통합, 그리고 '아마존 효과(아마존을 비롯한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의 등장으로 유통 마진이 줄어 물가가 낮아지는 현상)'가 구조적인 저물가를 유발해 통화정책으로 이에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경기가 침체되는 가운데 백화점, 대형마트 등 일반 소매점에서 소비자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고 있지만 온라인 구매는 활황을 지속하고 있다.
온라인 구매를 위한 개인 신용카드 금액은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소매점 구매액을 넘어섰다. ‘물가안정목표제'를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중앙은행 입장에서 만성적인 저물가를 유발하는 아마존 효과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일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전자상거래·통신판매에 사용된 개인 신용카드 실적은 지난 7월 7조8369억원에 이른다. 전년동월대비 증가율은 20.1%로, 지난해 10월 이후부터 올해 7월까지 9개월 연속 20%를 넘어서고 있다. 반면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 종합소매에서의 신용카드 사용실적은 7월 6조8981억원으로 2.0% 하락했다. 한 자릿 수였던 종합소매 증가율은 올해 2월과 7월에는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소비심리 둔화와 온라인 가격 경쟁이 맞물려 온라인 쇼핑이 대중화되면서, 전자상거래·통신판매에 쓴 신용카드 사용액은 지난해 11월부터 종합소매를 웃돌고 있다.
중앙은행이 이같은 소비행태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 건 저물가 때문이다. 한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2.0% 수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데, 유통 마진을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가 공급측면에서 물가를 낮추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말 보고서를 내고 '온라인 상품 판매 비중이 1%포인트(P) 오르면 그해 물가상승률은 0.08~0.10%P, 근원인플레이션은 0.02~0.03%P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에도 아마존 효과는 주요 화두다. 지난해에는 주요국 중앙은행총재·경제전문가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잭슨홀 미팅에서 아마존 효과가 주요이슈로 논의됐고, 일본 중앙은행(BOJ)은 아마존 효과가 일본 내 근원물가 둔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공식화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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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0%대 물가 상승률의 요인으로 공급측면을 주로 보는지, 아니면 수요측면을 보는지는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와 한은은 저물가의 원인으로 수요측 요인보다는 아마존 효과를 비롯한 공급측 요인을 강조한다. '수요측 물가 하방압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방어 논리로 활용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유통 구조, 구매행태의 변화가 구조적으로 물가를 낮추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은 관계자는 "저물가의 수요측 압력도 줄어들고는 있지만 온라인 유통과 같은 구조적 요인, 정부의 복지 등으로 물가가 낮아지는 현상도 분명히 존재한다. 물가만 보고 통화정책을 경직적으로 운용하기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했다.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의 수요측 물가하방 압력에 대한 대응을 강조하면서도 아마존 효과로 통화정책의 물가 대응이 상당히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부진으로 소비, 투자가 줄어들면서 유발되는 수요측면의 물가 하락은 통화완화정책으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공급측 요인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급요인 때문에 물가가 하락했을 때는 통화완화 정책을 하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며 "실제 공급요인으로 상품 가격이 하락하면 굳이 물가를 끌어올릴 필요성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도 "아마존 효과는 유통가격을 하락시켜 비용을 줄이는 것인데, 물가안정목표제를 두고 통화정책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를 맞추기가 어렵다"고 했다.
조은임 기자(goodn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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