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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조국 사태’가 촉발한 진보진영 분화…“사회개혁 새 공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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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그 이후] ④ 진보를 다시 생각한다

‘반보수연합’으로 뭉친 정체성

조국 사태 거치며 시각차 드러나

“조국수호 피켓 보며 새 피아 구분”

“연대할 때 하더라도 새 공간 필요”

정의당도 민주대연합론 길들여져

진보정당으로서 제 역할 못해

시민사회는 현정부와 기반 겹쳐

“기존과 다른 방향 제시 있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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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으로 촉발된 ‘조국 대전’은 두 개의 대결 축을 따라 펼쳐졌다. 보수와 진보가 부딪친 ‘진영 대 진영’의 전선이 하나였다면, 다른 하나는 ‘진보개혁’이란 덩어리로 묶여온 진영 내부의 갈등이었다. ‘진보개혁’ 진영의 견해는 조 장관 일가의 처신에서 드러난 ‘공정·평등 가치의 훼손’ 문제와 조국이라는 인물을 통해 실현하려는 검찰개혁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갈렸다.

조 장관이 사퇴하고 국회를 통한 제도개혁 단계로 정국이 전환되면서 3개월 가까이 나라를 뒤흔든 ‘조국 대전’도 수습 국면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거치며 박근혜 탄핵과 정권교체를 이룬 진보개혁 진영 내부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힘들어졌다.

■ 정치적 시효 다한 ‘반보수연합’

이른바 ‘진보개혁’이란 이름으로 묶인 정치 진영은 2007년 대통령 선거 이후 형성된 보수독점적 정치체제 아래서 정치적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리버럴(민주개혁파)과 진보(사회개혁파)가 손잡은 ‘반보수연합’의 성격이 짙었다.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야권연대’는 정치적 상수가 됐고, 2012년 총선·대선과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까지 꾸준히 위력을 발휘했다. 정당 차원에서는 정책연대-후보단일화가, 유권자 수준에서는 ‘지역구 투표는 민주당, 정당투표는 진보정당’이라는 투표행태가 ‘정치적 문법’으로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같은 진영’이라는 정체성이 민주당과 진보정당 지지자들 사이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조국 정국을 거치면서 이런 ‘진영적 정체성’은 진보정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판단과 행동을 제약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경제분야 시민단체에 소속된 40대 활동가는 “처음 여러 의혹이 제기됐을 때는 개혁을 거부하는 쪽의 저항으로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혼란이 커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국이라면 이러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말 그대로 멘붕이 왔다”고 말했다.

8월 말 검찰이 조국 일가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이른바 ‘진영 논리’는 더 거세졌다. 일부는 거칠고 적대적인 언사를 동원해 ‘조국 방어’에 미온적이거나 반대하는 진영 내 인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국 장관 임명에 공감하지 않았던 이들은 입을 닫거나, ‘검찰개혁’이란 대의를 앞세워 조국 대전에 동참했다. 이른바 ‘11시간 자택 압수수색’이 조 장관에 대한 동정론과 검찰에 대한 공분을 자아낸 것도 무시 못할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9월28일. 서초동 촛불집회에 예상 못한 대규모 인파가 모여들면서 ‘내전’의 판세는 ‘조국수호파’ 쪽으로 확연히 기울었다.

■ 거세진 진영 논리, 폭로되는 무능

‘조국수호파’는 과거 군사독재에 저항하고 2000년대 보수정부와 맞서며 오랜 기간 쌓아올린 협업과 연대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반면 ‘진보’의 정체성에 더 충실했던 소수파는 위축됐다. 민변에서 활동하는 30대 후반의 변호사는 “(서초동 집회 참여자들이) 교수 사회의 기득권 네트워크를 자녀 입시에 활용한 장관 후보자를 지키기 위해 ‘내가 조국이다’란 손피켓을 들 수 있는 데에 놀랐다. 피아가 확실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분란이 일까 입을 닫았다”고 했다.

진보층의 상당수는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진보의 무능’과 ‘연대(연합)를 통한 개혁의 진전과 세력 확장’이라는 오랜 정치기획의 한계를 절감했다. 대표적인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이번 사태 내내 갈팡질팡했다.

선거제 개편을 위해 민주당과의 연대에 매달리고, 현안마다 민주당 지지층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던 정의당의 처지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본격화된 ‘연합을 통한 확장’ 프로젝트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의당에서 활동했던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생존을 위해 리버럴(민주개혁) 세력인 민주당과 손잡아야 했던 상황이 지속되면서 진보정당 안에선 독자적 생존 능력과 의지가 모두 쇠퇴해버린 게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선거만 다가오면 고개를 들었던 ‘민주대연합’론이 어느새 진보정당 운동의 주류 노선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진보정당 및 노동운동과 정치적으로 교감했던 시민사회의 진보블록도 눈에 띄게 위축됐다. 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두드러졌다. ‘더이상 정부와 거리를 둔 사회개혁 운동을 조직하긴 어렵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최근에 펴낸 <불평등의 세대>란 책에서 “한국의 주요 시민단체들은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합법화된 정치 공간에서 새롭게 대중운동을 주도하려는 (혁명적 사회주의에서) 개종한 지식인들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됐다”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폭압과 실정에 맞서 재결집한 시민사회는 2017년 대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대거 정치권으로 진입했다. 시민사회가 국가화가 됐다”고 꼬집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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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의 ‘재분화’는 가능한가?

진보세력 안에선 ‘조국 사태’를 계기로 ‘재분화’와 ‘자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된다. 민주개혁파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과 선을 그으며 ‘독자세력화’를 추구하던 진보정당 운동 초기의 노선과 결기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50대 초반의 민주노총 조합원은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내기까지 느꼈던 나의 좌절감과 조국 장관 일가가 누린 특권 사이의 간극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연대할 때 연대하더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반성문’을 내놓았다. 그는 31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조국 장관을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아 정의당이 받아야 했던 비판을 언급한 뒤 “특권정치 교체를 위해 불가피하게 제도개혁을 선택한 것임을 왜 몰라주냐고 항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생각이었다. 질책은 아무리 절실한 제도개혁이라도 일관되게 지켜온 원칙과 가치에 앞설 수 없음을 일깨우는 죽비 소리였다”고 했다.

장 기획위원은 “조국 사태로 민주개혁파와 사회개혁파가 재분화할 계기가 마련됐지만, 앞길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선거제가 개편되더라도 당의 지지도를 지난 총선 득표율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면 의석수 확대는 낙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진보정당 내부에서는 진보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노동·복지·환경·여성 등 하위 영역에서만 대안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민주개혁파가 제시해온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개혁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제는 이 또한 ‘총론적 문제의식’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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