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원로 경제학자 변형윤 교수 회고록 ‘학현일지’ 발간
변형윤 교수 |
“부익부 빈익빈이 나타나고 있다.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하자.”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92)는 1967년 2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한 교수단 평가회’에서 계획의 부작용을 이렇게 지적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도 참석한 자리에서 칭찬 일변도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 당시 변 교수가 손에 들고 있던 지시봉으로 박 대통령을 가리켰다고 오해한 한 장관은 변 교수를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 상황을 말없이 지켜봤다고 한다.
31일 발간된 ‘변형윤 회고록―학현일지(學峴逸志)’(현대경영사)의 한 대목이다. 변 교수는 주류 경제학 안에서 소득 재분배와 균형적 경제발전을 주장한 원로 진보 경제학자다. 우리 학계에 계량경제학을 처음 제대로 도입해 가르친 인물이기도 하다. 회고록에는 황해도 황주의 선비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학자로서 살아 낸 우리 현대사의 장면들이 담겼다.
1960년 4·19혁명 당시 피 흘리는 학생 시위대의 모습을 보고 분노한 그는 4월 25일 교수단 시위에 참여했고, “학자로서 말과 글로 사회운동에 참여해야겠다”고 결심이 섰다고 했다. 이후 변 교수는 군사정권의 경제개발계획에 찬성하면서도,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성과가 독점되는 부작용을 지적했다. 1971년에도 박 대통령이 참석한 교수단 평가회에서 “실업률이 공식 통계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참석자들은 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한국 경제의 현실과 민심의 동향이 박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으로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은 그는 민주화 성명 발표를 주도하면서 4년 동안 해직교수 생활을 했다. 그가 해직교수 시절 창립한 ‘학현연구실’은 오늘날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발전했다. 이 연구실 출신 교수들이 ‘학현학파’로 불리지만 변 교수는 “동질적인 철학이나 이론으로 분류되지 않기에 학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른바 ‘학현학파’가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직접 언급은 책에 없다. 변 교수는 “시장은 결함이 있기에 정부가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경제학은 인간 중심의 학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책을 맺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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