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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도원에 잠들었던 110년 전 신랑 혼례복, 국내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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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신부가 수집, 보관

1925년 기록영화 '한국의 결혼식'에 등장

국립민속박물관, 보존처리 거쳐 첫 전시

중앙일보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 보관돼 있다가 국내 기술로 보존 처리를 거쳐 이번에 공개된 20세기 초 한국 신랑의 혼례복(단령)의 보존 처리 후 모습.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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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영상 속에서 짙은 색상 단령을 입은 신랑이 병풍 앞에서 정중하게 신부를 기다리고 있다. 족두리에 녹원삼을 입은 신부가 수모(결혼식 도우미)의 부축을 받아 큰절을 한다. 독일 바이에른 주 뮌헨 인근의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측이 1925년 촬영해 수도원 내 선교박물관에 보관해온 무성기록영화 ‘한국의 결혼식’(Eine koreanische Hochzeitsfeier) 장면이다. 기록에 따르면 해당 영화는 함경 안변군 내평성당 인근에서 찍었으며 영화 속 신랑 신부는 직전에 갓 결혼한 실제 부부로, 영화를 위해 결혼식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한국 전통 혼례 풍속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영상 속 신랑 혼례복이 국내에서 보존 처리를 마치고 공개됐다. 30일 국립민속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기자 간담회를 열고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서 보관해온 110년 전 한국 신랑 혼례복(단령)을 2년 간 겉감 직물 보강 등을 마치고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게 됐다”고 소개했다. 유물은 국립민속박물관 내 ‘새로운 자료와 보존처리’ 코너에서 내년 1월27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단령이란 조선시대 관리들의 일상복이며 혼례시 신랑이 착용한 의복을 일컫는다. 이번에 소개되는 단령은 1909년 성 베네딕도수도회 소속으로 선교활동을 위해 한국에 왔던 도미니쿠스 엔스호프(1868∼1939) 신부에 의해 수집됐다. 그러다가 오틸리엔수도원의 총아빠스(원장신부)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가 1925년 내한해 ‘한국의 결혼식’을 연출할 때 신랑의 복장으로 활용됐다. 다시 독일로 건너간 단령은 영화 속 신랑이 착용하고 있던 ‘각대’ ‘목화’ ‘버선’ 등과 함께 수도원 수장고에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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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총아빠스(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1870~1939)가 1925년 한국 체류 당시 연출, 제작한 무성기록영화 〈한국의 결혼식 Eine koreanische Hochzeitsfeier〉의 한 장면. [영상 캡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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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총아빠스(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1870~1939)가 1925년 한국 체류 당시 연출, 제작한 무성기록영화 〈한국의 결혼식 Eine koreanische Hochzeitsfeier〉의 한 장면. [영상 캡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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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총아빠스(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1870~1939)가 1925년 한국 체류 당시 연출, 제작한 무성기록영화 〈한국의 결혼식 Eine koreanische Hochzeitsfeier〉의 한 장면. [영상 캡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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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소재문화재재단 차미애 조사활용팀장(미술사 문학박사)은 “2016년 실태조사를 통하여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 영화 속 신랑·신부의 혼례복이 소장된 것을 파악했다”면서 “그 중 신랑 단령의 직물 손상이 매우 심해 보존처리 지원을 결정하고 국립민속박물관과 협업을 통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선교박물관엔 영상 속 신부가 착용한 ‘녹원삼’ ‘화관’ ‘용잠’ ‘뒷댕기’도 함께 확인됐지만 상태가 비교적 좋아 이번 보존처리엔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전시엔 당시 베버 신부가 제작한 20분 분량의 기록영화 ‘한국의 결혼식’도 함께 상영된다.

베버 신부가 영상을 찍은 것은 선교자들에게 한국 문화를 이해시키고 사전 교육을 하고자 함이었다. 먼저 파견된 신부들은 마찬가지 의도에서 한국의 일상 용품과 의복‧장신구 등을 수집해 갔고 수도원에 100년 가까이 보관돼 왔다. ‘한국의 결혼식’을 연출한 베버 신부는 1911년과 1925년 등 적어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이 사이 191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여행기를 냈다. 1925년 체류 때는 ‘한국의 결혼식’ 외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기록영화를 찍어 독일에 한국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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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 보관돼 있다가 국내 기술로 보존 처리를 거쳐 이번에 공개된 20세기 초 한국 신랑의 혼례복(단령)의 보존 처리 전 모습.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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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 보관돼 있던 20세기 초 한국 신랑의 혼례복이 국내 기술로 형태 보수 작업을 진행 중인 모습.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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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소재문화재재단 측은 “이번 복원 작업은 미르치과 네트워크 후원금에 힘입어 이뤄졌다”면서 “향후에도 해외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우리 문화재가 제 모습으로 세계 관람객을 만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작업은 오는 11월 발간 예정인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도 게재될 예정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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