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평화의 소녀상’ 공식 제막식
2016년 미국 도착 후 창고 전전하다 한인타운에 영구 보금자리
가해자가 인정해야 화해 가능, 덮으려 하니까 바로 세우려는 것
이정실 미국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 회장이 26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애난데일 한인타운에서 ‘평화의 소녀상’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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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홀가분하죠. 제 꿈에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2016년 11월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창고를 전전하던 ‘평화의 소녀상’ 공식 제막식이 27일(현지시간) 애난데일 한인타운의 한 건물 앞 잔디밭에서 열렸다.
제막식을 하루 앞둔 26일 가로 200㎝, 세로 160㎝, 높이 123㎝ 크기의 소녀상이 미리 마련된 콘크리트 받침대 위로 옮겨졌을 때 이정실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 회장(56)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조현숙 워싱턴 희망나비 대표, 이재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워싱턴협의회 회장 등 워싱턴 평화의 소녀상 건립 주역들도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이정실 회장에게 워싱턴 소녀상 건립은 운명과 같았다. 그가 2009년 미국 대학에서 받은 미술사 전공 박사학위의 논문 주제가 바로 ‘공공조형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공공조형물이 사람들에게 주는 치유와 정체성 형성 등의 기능을 연구했다. 부전공은 여성주의 미술사였다. 그는 미술사 강사이자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면서 2009년부터 워싱턴 정대위 부회장을 맡았다. 2012년 워싱턴 정대위 설립 20주년 기념 전시회와 각종 행사 준비를 도맡으면서 위안부 문제를 '소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에게 위안부 문제는 한·일 역사 문제를 뛰어넘는 세계적이고 현대적인 의미를 갖는 사안이다.
“한인 중에도 이 운동을 응원하지 않는 분들이 꽤 있어요. 과거의 아픈 기억을 굳이 꺼낼 필요가 있느냐, 여기서 우리 2세, 3세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이런 걸 꺼낼 필요가 있느냐, 여러 가지 이유를 대세요. 하지만 운동을 하면 할수록 위안부 문제는 현재의 문제이자 세계적인 사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 식민지 시대에 여성들이 당한 강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핍박받는 여성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그래서 중요하다. “대부분의 위안부 운동을 하는 분들이 소녀상은 싸우자는 게 아니라 치유,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인류애에 관한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이 부끄러워 덮고자 하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동상의 기본적 의미입니다.”
가해자가 인정하지 않는 한 화해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위안부 운동의 정신이자 궁극적으로 소녀상이 던지는 문제의식이라는 것이다.
소녀상은 이 회장에게 마음의 짐이었다. 쉽게 보금자리를 찾을 것 같았던 소녀상이 3년 동안 건립될 터를 찾지 못해 표류했다. 2017년엔 메릴랜드주 솔즈베리대 교내에 소녀상을 설치키로 하고 건립식 준비까지 마쳤지만, 학교 측이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일본 측 방해가 있었으리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주미 일본대사관 측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한번은 일본대사관 측에서 보자고 하길래 ‘왜 그렇게 소녀상을 싫어하느냐’고 물었어요. 나중에 이유랍시고 장문의 e메일을 보내왔더군요. 하나같이 이유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진짜 이유는 ‘창피하다’라는 것이겠죠. 부끄러운 사실을 계속 생각나게 하니까 싫은 거예요.” 소녀상의 존재 이유는 할머니들이 언제까지 살아 계실지 모르지만 할머니들이 원하는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끝까지 이루겠다는 다짐이라고 이 회장은 말했다.
워싱턴 정대위 부회장, 회장으로 만 10년 동안 일하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올해 말 회장직을 내려놓을 예정이지만 학술회의 개최, 작품 전시 및 영상물 상영, 차세대 교육, 사료 정리 등 그간 해오던 일은 계속할 생각이다. “학자로서 위안부 문제에 관해 글을 쓰고, 학술회의·전시회를 기획하고, 자료 정리하느라 바쁠 것 같아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위안부 문제에 매달려야 할 겁니다.”
워싱턴 | 글·사진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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