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1 (토)

[책과 삶]“우리의 무기는 벌거벗은 가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페멘 선언

페멘 지음·길경선 옮김

꿈꾼문고 | 112쪽 | 1만1500원

경향신문

“우리의 육체를 통제하고 우리의 정신을 억누르는 가부장제는 이제 우리의 투쟁하는 벗은 몸에서 그 종말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그 가슴속에서 새로운 적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바로 페멘이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가슴에 짧은 슬로건을 적는 반라의 기습 시위로 잘 알려져 있는 페미니즘 저항단체 페멘의 ‘페멘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2008년 우크라이나에서 섹스 관광을 위한 성 산업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시작한 이 단체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공모하에 관리되는” 여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페멘은 2010년 우크라이나 대선 투표장에서의 상의 탈의 기습 시위를 계기로 정치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대주교에게 물을 끼얹거나 무슬림 여성들은 니캅·부르카를 벗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반종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페멘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여성혐오 집단의 살해 위협도 본격화됐다. 책은 페멘 선언을 비롯해 페멘의 역사, 투쟁 대상, 활동 방식 등을 다룬다. 세계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도 포함됐다. 페멘은 창립 이후 10년 만에 독일, 프랑스, 터키 등 17개국에 수백명의 활동가를 둔 국제단체로 성장했다. 한국에 공식 지부는 발족하지 않았으나, 2018년부터 페멘의 영향을 받은 상의 탈의 시위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우리의 무기는 벌거벗은 가슴이다.” 페멘 선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여성 연예인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악플에 시달려야 하는 한국사회, 이 안에서 오늘도 치열하게 자신만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여성들을 떠올린다. 반라 시위를 맨 처음 시작한 페멘 공동 창립자 옥사나 샤츠코는 지난해 세상을 등졌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