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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세상읽기]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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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북한이 신형 건조 잠수함을 공개한 데 이어 10월2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단행하였다. 이 시험발사는 북한 매체의 주장대로 자위적 군사력을 강화하는 측면과 함께 북·미 실무접촉을 앞두고 협상력 제고를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유럽 6개국이 SLBM 시험발사를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규탄한 데 이어 우리 군 내부에서도 핵잠수함 도입을 위한 물밑작업이 공개되는 등 우려 섞인 반향들이 지배적이다. 북·미 간 협상이 교착국면이어도 북한이 넘어서는 안될 레드라인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 있게 얘기하고 있는 추가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레드라인의 범주이다. 북한이 이 선을 넘을 경우 북핵 협상을 정치 목적으로 활용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완전히 무너진다. 북한은 이러한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그 틈새를 활용,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협상력을 제고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그러나 지난 수차례 단거리 미사일 발사 행위와 이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의미가 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SLBM이라는 것 자체가 목표지에 은밀하게 접근하여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ICBM보다 훨씬 정확도가 향상된 무기체계이다. 수중에서 몇 개월간 활동할 수 있는 핵잠수함과 연계된다면 매우 위협적인 무기가 되는 것이다. 북·미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넘어가자는 입장인 것으로 보이나 지난 북·미 실무협상도 합의 없이 종료된 상황에서 미국 내 대북 강경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SLBM 발사는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기보다는 트럼프 행정부를 난처하게 하고 의회 내 강경파들을 자극해 협상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는 조셉 윤 전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지적은 미 조야의 현재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북·미협상의 진전을 기대한 우리로서도 북한이 협상에 집중하지 않고 계속 탄도미사일 개발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의 핵잠수함 무장론도 핵무장론 못지않게 핵군비 경쟁으로 전도될 수 있어 동북아 불안정성을 키우게 될 것이다.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에서 미국은 과거보다는 유연한 입장에서 협상이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미국이 아무것도 들고나오지 않았으며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김명길 대사의 성명을 보면 북한의 주장이 분명해 보인다. 뒤집어보면 자신들은 핵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동결하고 유해 발굴 등 싱가포르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협조했는데 미국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것이다. 지난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폐기 카드까지 들고나왔으나 미국이 제대로 값어치의 계산을 안 해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미국이 제시한 유연한 방안들도 북한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지속되어야 한다. 북한의 SLBM 시험발사 여파는 있지만 북·미협상이 어렵게 시작된 것인 만큼 모멘텀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미 국무부 대변인의 언급처럼 북·미 간 좋은 협의를 가졌다고 긍정 평가하였다. 북한도 완전히 회담 파탄을 선언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차기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다. 북한은 이번 실무협의 결과를 다시 리뷰하고 조속히 협상에 복귀해야 할 것이다. 대선국면까지 현재의 협상국면을 끌고 갈 생각이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도 긴장국면의 조성보다는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타결안을 만들어나가는 전략적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 남북협상의 역사를 볼 때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거나 수세적인 입장에 몰리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긴장을 조성하여 상대방의 변화를 위협·압박하는 전술을 취했다. 물론 협상이라는 것은 밀고 당기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넘는 북·미 간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긴장조성이나 기싸움보다는 진정성 있는 대화와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

북·미관계가 협상장 밖에서 서로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연결고리를 만들고 고리들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북핵 협상이 제 궤도에 올라 현재의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도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간에는 핵문제 해결과 함께 해소해야 할 문제도 있지만 비핵화 협상과는 별개로 진행되어야 할 일도 많다.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와 보건, 의료, 방역 등 공동 대응, 체육이나 역사 등 민간차원의 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 북핵 관련 대타협이 이뤄지면 남북경협의 문제도 풀리게 될 것이다. 모든 문을 닫고 대화와 협력을 거부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면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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