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3 (월)

장순흥 한동대 총장 "정부 탈원전 정책이 한국 무너뜨리고 있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은 한국 원자력 산업뿐만 아니라 한국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너머 자유세계 전체의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한국 원자력 기술 자립과 수출 신화를 주도했던 석학 입가로 기탄없는 비판이 쏟아졌다. 1980년대 후반 영광 3·4호기 설립,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주역인 장순흥 한동대 총장 겸 카이스트 교수(65) 얘기다.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장 총장은 "한국 원자력이 무너지면 자유세계의 원자력이 무너지고 러시아·중국으로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가고 만다"면서 이처럼 경고했다.

"원자력 기술은 우리가 세계 1위입니다. 이걸 안 한다면 시장 주도권은 2·3위인 러시아와 중국, 나아가 4위인 프랑스로 넘어갑니다. 당장은 몰라도 향후 에너지 안보와 핵 안보 등 전 차원으로 문제가 확산될지 몰라요. 우리 정부가 그런 각도에서 신중히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정부가 국내 원전 건설은 안 된다고 하면서 수출을 장려하는 모습은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그는 지적했다. 전 세계로 '원전 한류'를 전파하려면 국내 공급망을 최소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원전 건설이 이뤄져야만 설계·제조·부품 공급 같은 국내 공급망이 유지될 수 있다"며 "탈원전 정책은 이 체제를 깨뜨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지금 우리는 가동 원전마저 40년 이상 운전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반면에 미국은 60년을 지나 80년까지 연장을 추진하고 있어요. 계속 운전을 신청하면 거의 다 승인이 되기 때문이죠. 80년짜리도 안전에 별 문제가 없다는 건데, 외국에서 80년 쓸 것을 우린 40년만 쓰고 버리라는 격입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이처럼 그가 말할 수 있는 건 국내 원자력 산업 성장이 그의 이름 없이는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72학번이다. 1976년 졸업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매사추세츠공대(MIT) 원자력공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고 1982년 국내 '원자력계 대부' 한필순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를 만난 이후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그해 카이스트에 원자력공학과가 처음 생겼다.

장 총장은 "한국 원자력 기술 자립이 실현된 데에는 이때부터 양성된 카이스트 석·박사 연구원들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당시 제가 한 박사님께 제안한 건 이런 거였습니다. '연구자들이 기술 개발만 하면 기술 자립이 안 된다. 사업을 통해 기술 개발을 해야 한다.'"

한 박사와의 인연과 함께 이상훈 박사와의 관계 또한 중요했다. 당시 원자력안전기술원 초대 원장이던 이 박사는 원자력 안전 규제의 중요성을 그에게 각인시킨 인물이다. 장 총장은 "이 원장과 함께 매주 월요일 오후 원자력 안전에 대해 논의했다"며 "영광 3·4호기 안전감압장치 설치,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PSA)의 적극 도입 등으로 원자력 안전성을 높여 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 불신이 작지 않은 데 대해서는 "우리 또한 반성할 것이 있다"며 덧붙였다. "적극적으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방사선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었어요. 너무 다급한 대피, 피난시설 스트레스 등으로 사망자가 나온 거였죠. 지금이라도 연구원과 학계가 원자력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국민에게 충분히 심어줘야 합니다."

최근 그는 카이스트 교수 정년을 맞아 책 두 권을 펴냈다. '가지 않은 길-원자력, 상아탑을 넘어 원전 수출까지'와 '카이스트 혁신, 10년(2001~2010)'이다. 책 속에는 한국 원자력계가 불모지이던 시절부터 카이스트 교수로서 꾸준히 한 우물을 판 그의 생애가 그대로 농축돼 있다.

그는 "원자력이야말로 한국이 에너지 강국이 될 수 있는 대안이라 여기며 살았다"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원자력공학 전공자가 자꾸 줄고 인재들이 해외로 떠나는 추세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시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