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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다른 삶]간장게장 해먹자고 게잡이…자, 문화충격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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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의 ‘영국 시골살이’

남편 조(Joe)의 나라에 와서 근 3년을 살아보니 참 고생 많았겠구나 하는 역지사지 마음이 자주 든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한국으로 조는 홀로 건너와 10년 넘게 밥벌이하면서 육아까지 감당했으니 입이 한 개라 아쉬웠던 말들이 많았을 거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조는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한국이 살기 좋아서? 아니면 아내가 사랑스러워서? 절대 그럴 리가.

여기 와서 나는 날씨에 따라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변덕병, 외국인 차별받고 할 말 다 못해 억울병, 어쩌다 큰맘 먹고 나간 외식 맛에 좌절병, 네 살 딸아이에게 영어 발음을 지적받는 어이병까지 복합병을 금세 얻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영국 지방 마을에서 눈은 황홀하고 폐는 맑아졌지만 마음은 종종 소화불량 상태가 된달까. 그 불편한 감정들은 어처구니없다는 콧방귀로 표출되기도 하고 혼잣말하기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조는 자기도 당해봤단다. “컬처 쇼크(Culture shock, 문화충격)”라며 진단까지 내려준다. 나의 기존 방식과 다르거나 익숙하지 않아서, 또는 미세한 차이로 신경에 거슬리는 영국 생활의 면면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란다. 쇼크라고 하니 뭔가 한 방에 진행될 것 같지만 생활 도처에 존재하는 낯선 문화를 마주하면서 생기는 마음 상태이기 때문에 은근히,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무서운 놈이라고 겁도 준다.

그러고 보니 당장 밥 먹는 숟가락부터 다르게 생겼다. 길이(피트나 인치), 무게(파운드나 스톤), 속도(마일) 등 온갖 단위가 달라 감이 잘 안 온다. 운전대는 오른쪽, 왼쪽 찻길 주행, 나 홀로 주유, 온돌마루 말고 카펫, 밖과 안 구별 없이 신발 신기, 그릇은 세제 물에 담갔다가 그대로 건조시키는 설거지, 빵집보다는 집에서 베이킹, 밑반찬 밥상 대신 한 접시 식탁 등 끝도 없다. 요즘 입을 옷이 왜 없나 했더니 한국에서 들고 온 옷가지들도 여기선 묘하게 재질과 기능이 맞지 않는다.

경향신문

강이나 하천에 가서 아이들과 게잡이(Crabbing)를 한다. 바구니형 그물망 안에 들어있는 낚시 바늘에 베이컨을 걸고 물에 던져 놓으면 게들이 냄새를 맡고 바구니 안으로 들어온다. 쏙 들어가 있다 싶을 때 천천히 잡아 올리면 된다. 게를 잡고 신난 아이와 아빠(왼쪽 사진). 이 곳 상점들은 오후 4~5시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일요일에는 아예 문을 닫는 곳도 많다. 주말에 한적한 시내에 나와 보니 거리에 코바늘과 뜨개질로 꾸민 작품들이 재밌게 늘어서있다. 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Bollard)에다가 주민들이 만들어 설치해 놓은 것인데 이것도 개인의 여가 시간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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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을, 눈은 황홀했지만

변덕병·억울병·좌절병·어이병…

마음은 종종 소화불량 상태가 돼

한국살이 남편 진단은 “컬처 쇼크”

‘위안이 되는 활동 해보라’며 처방


사먹었을 게장 끓이며 이웃 민폐

평소 익숙하여 당연하게 여긴 것

없어지고 대체된다고 생각해봐요

손발 고생 물리적 체험 아니라도

정말 대수롭고 감사함을 알게 돼


이곳에 오자마자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여기서는 만 4세부터 정규 교육이 시작된다)한 우리 아이에게도 컬처 쇼크는 있었다. 전교생이 130명 남짓인 이 작은 시골학교임에도 반 친구 이름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현이, 지원이, 아윤이… 한국 친구 이름은 아직도 생생히 떠올리는데 음절과 소리가 낯선 영어 이름들이 처음에는 귀에 잘 안 들어왔었나 보다. 교장선생님을 만나면 자동으로 배꼽인사를 해서 웃음을 사기도 했고, 여기 발레는 진짜 발레가 아니라며 영국인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영국왕립무용학교 출신 선생님이 가르치는 발레전문학원을 다니면서 뭔 소리인고 했더니, 한국의 백화점문화센터 발레 경험이 전부인 우리 아이의 눈에는 다양한 동작 연습과 빠른 진도의 예전 경험에 비해 기초를 중시하여 몇 달간 기본 동작만 반복하는 이곳 발레가 시시해 보였던 것이다.

다른 문화는 뜻하지 않게 경제 쇼크로도 이어진다. 얼마 전 우리는 전기와 가스 공급업체(영국은 50개 이상의 에너지 사기업이 있다)로부터 300만원을 돌려받았다. 서비스 초반 몇 달을 기준으로 월평균 사용치를 가늠하여 은행에서 자동으로 사용료가 이체되는데 동절기의 비싼 달을 기준으로 평균치가 산정된 것이다. 그렇게 약 3년이 지나고 보니 우리가 실제로 사용한 금액보다 300만원이나 과잉 청구된 것. 인건비가 비싸니 직원이 직접 사용 미터기를 확인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 경우처럼 사용치를 가늠하여 비용이 청구되거나 요즘은 스마트 미터(Smart meter)기를 설치하여 각 가정집의 소비량을 중앙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도록 변하고 있다.

지문인식이나 번호키가 익숙하여 열쇠를 들고 다니는 습관이 아직 몸에 배지 않았다면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야심한 밤에 쓰레기 버리러 나왔다가 문이 잠겨버려서(보통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잠긴다) 열쇠전문가(Locksmith)를 불러야 했다. 문 열어준 대가로 90파운드(약 13만원)를 지불했다. 이웃의 전동 드릴을 빌려 열어보려고 시도하다 잠금장치까지 파손돼서 그것마저도 교체해야 했다(약 8만원 돈이었다). 옆집 아저씨 크리스는 이웃과 얘기하던 중 맞바람에 현관문이 닫혀서 어이없게 서비스를 불러야 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지 아저씨 휴대폰에는 열쇠전문가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었다. 조는 이 일로 고수입의 신통방통한 문 따기 기술에 매료돼 아마존에서 구입한 관련 장비로 현관문 앞에서 몇 시간씩을 서성대는 후유증까지 겪었다.

집을 구매할 때는 부동산비 외에 다른 목돈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선 하우스 서베이 회사에 의뢰해 건물의 안전성과 하자 여부를 구매 이전에 철저히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필수다. 계약 전문 변호사(Solicitor)도 고용해 몇 달간의 거래 과정을 거쳐서 집 계약을 체결하는 게 관행이다. 안전과 행정 절차를 중시하는 영국인들의 방식인 것이다.

나 자신에게는 참 불편한 일이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대단해 보이는 사회문화도 있다. 집안 시설이나 가전이 고장나면 수리전문가(배관공, 전기사, 가전 수리공 등)를 부르는데 서비스 출동비는 고치든, 못 고치든 지불해야 한다. 얼마 전 우리 집 식기세척기가 성능이 좋지 않고 비상등이 자꾸 켜져서 수리전문가를 불렀는데 특별하게 고장난 게 없다는 답변만 받고 출동비 8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만약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였다면 다음 서비스 예약일에 부품비와 출동비를 다시 내야 한다. 공평하게 들리지 않겠지만 서비스 제공업자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주유비, 연장비, 기술노동비 등을 인정해주는 정당한 시스템인 것이다.

이곳 상점들은 평일 오후 4~5시면 문을 닫는다. 토요일에는 오후 4시까지, 일요일에는 대부분 휴무다. 이 정도면 돈 버는 장사 안 하겠다는 건데, 여기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개인의 여가 시간을 보장받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일면식조차 없는 타인에게도 인사를 건네는 것이 자연스러운 영국인들이기에 본인만 개방적이라면 어디를 가나 환영받을 수 있고 매너와 기본을 중시하기에 사회 전반적으로 합리적인 분위기이기도 하다.

타국살이라는 매를 먼저 맞아 봤다고 조는 나에게 조언을 해준다. 그 스트레스와 충격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편안하거나 위안이 되는 활동을 해보라고 말이다. 어느 정도 마음의 균형이 생긴단다. 그래서 조는 서울에서 살면서 주택과 가구를 직접 고치면서 자신만의 영국식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었을까. 영국 맥주 맛이 그리워 맥주 제조를 시작했고, 부품도 구하기 힘든 영국산 중고 오토바이를 사서 타는 것보다 수리하는 데에 더 열중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김장독을 사 들고 와 베이컨을 직접 만들겠다고 했다. 한국의 베이컨은 두께가 너무 얇고 향이 다르다나. 단순히 취미가 많나보다 했는데 그게 조가 터득한 큰 불평·불만 없이 지내는 한국생활의 비결이었나 보다.

나는 여기 와서 인생 첫 김장을 해냈다. 5포기로 시작해서 요즘은 50포기씩 한다. 엄마의 김치 맛을 떠올리며 현지에서 공수 가능한 재료들을 버무리니 우리만의 비법도 탄생했다. 이 시골에도 김치 맛을 아는 ‘국제적인’ 친구들이 있어 우리 김치로 인심까지 쓴다. 유일한 한국 이웃을 통해 달래와 명이나물 식별법도 배웠고 영국 사람들에게 절대 먹으면 안된다고 알려진 고사리(Bracken fern) 금기까지 깼다. ‘어글리 코리안’은 절대 안되리라 다짐했는데 산책길에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고사리떼를 보고 있자면 성인군자가 되긴 싶지 않다. 한국에서도 입에 잘 대지 않았던 고사리를 직접 채취해서 삶고, 말리고, 물에 불리고 또 삶은 뒤 찢어내 이것을 또 한참 끓여내고 보니 고사리 육개장의 위대함이 보였다. 사회적으로 가격 보호를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외치고 싶을 만큼 엄청난 수고가 담긴 음식인 것이다.

간장게장 해먹자고 게잡이(Crabbing)도 다닌다. 여기에선 아이들의 흔한 놀이라서 다행히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진 않는다. 단, 한바탕 재밌게 게잡이를 한 후 모두 방생하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들은 신나게(나에겐 참 창피하게) ‘냠냠송’을 부른다는 차이점은 있다. 살아있는 신선한 재료라 어디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와서 요리를 시작한다. 레시피대로 냉동실에서 잠시 기절시킨 게의 등껍질과 몸통을 해체하여 솔로 구석구석 박박 문질러 씻고 다시 한 몸으로 조립한 다음, 다양한 재료를 넣고 미리 끓인 간장물에 입수시키면 1차 과정 완료. 그리고 그 간장물은 시차를 두고 여러 번 다시 끓여줘야 완성된다. 세 집이 한데 붙어있는 테라스(terrace) 건물 중간 집에 사는 우리에겐 참 부담스러운 요리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린고비 정신으로 아껴 먹어도 모자랄 판에, 먹어도 안전할까라는 의심스러운 마음은 조나 나나 매한가지. 세대에 걸쳐 내려온 정통 요리법으로 우리가 직접 만든 음식인데도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깨끗이 포장되어 판매되는, 또는 전문식당에서 정갈하게 차려 나오는 게장 모습에만 익숙해졌었던가. 간장게장 덕에 손발 고생과 이웃 민폐에 더불어 반성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될 줄이야.

2020년대를 코앞에 둔 우리에게 시뮬레이션쯤은 쉽지 않은가. 컬처 쇼크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거다. 평소에 익숙하여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떠올리고 한순간 그것들이 없어지거나 다른 걸로 대체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라. 우리처럼 손발이 고생해야 하는 물리적 체험은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았던 그 하나하나가 모두 대수로운 것임을 알게 되길 바란다.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도 더불어 피어날 것이니까.

▶필자 오지영

경향신문

영국 유학생활 후 서울에서 12년간 홍보인으로 일했다. ‘직장맘’으로 쫓기듯 살다가 2017년 영국 이민자가 되어 ‘외국인 전업주부’ 타이틀을 달았다. 남부 햄프셔주의 시골에 살면서 남편(사진 왼쪽)과 함께 개조한 소박한 캠퍼밴으로 구석구석을 여행 중이다. 딸 둘 밥 안 굶기고 ‘인생 취미’ 하나 만드는 게 현재의 목표다.


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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