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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난 사람은 안 먹어" 호랑이의 짐승과 사람 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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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44)



옛날에 가난을 비관하던 사람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부부 사이에도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삶의 희망을 잃은 남자는, 백인재라는 고개에 커다란 호랑이가 있어서 백 명이 모여야만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백인재를 찾아갔다. 그곳에 혼자 올라간다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과연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집채만큼 커다란 호랑이가 아가리를 딱 벌리고 서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남자가 코앞에 다가와도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남자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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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재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집채만큼 커다란 호랑이가 아가리를 딱 벌리고 서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남자가 코앞에 다가와도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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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날 보고도 잡아먹지 않는 거냐?” 그랬더니 호랑이가 대답했다. “나는 사람은 잡아먹지 않아.”

무슨 소린가 싶어 갸우뚱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자기 눈썹을 하나 뽑아서 주더니 그걸 대고 저기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라고 하였다. 남자가 호랑이 눈썹을 대고 보니, 사람인 줄 알았던 무리에는 온통 소, 닭, 돼지 등 짐승들뿐이었다.

남자가 호랑이 눈썹을 가지고 집에 오는 길에 등짐을 잔뜩 지고 힘겹게 길을 가는 부부가 있어 들여다보았더니 부인은 사람인데 남편이 닭이었다. 남자는 이 부부도 서로 맞지 않아 저렇게 힘들게 사는가 싶어 부부를 집 안으로 불러들여서는 자기 집에서 하루 묵고 가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밤사이에 잠자고 있던 자기 부인을 등짐장수 남편 옆에 옮겨 놓고는 함부로 남의 부인을 탐하느냐 소란스럽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남자는 등짐장수 남편과 자기 부인을 쫓아내고 등짐장수 부인과 짝을 맺어 함께 살았다.

‘호랑이 눈썹’이라는 흥미로운 모티프가 등장하면서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전개될 듯하다가 좀 생뚱맞은 결말을 맺는다. 이거 스와핑(swapping) 아닌가.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렇게 짝을 서로 바꾼 뒤에 이 부부도 잘되고, 저 부부도 잘된다. 서로 짝을 바꾸어 부부 인연을 새로 맺었더니, 즉 사람은 사람끼리, 닭은 닭끼리 부부가 되었더니, 그 이후부터는 하는 일마다 잘되어 잘살았다는 이야기이다. 해피엔딩이다.



맞지 않는 짝과 억지로 사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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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조건 참고 살기보다는 개인의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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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이제는 더 이상 책 잡히는 일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맞지 않는 짝과 힘들게 사느니 맞는 짝을 서로 찾아 나선다는 일 역시 크게 문제 될 것 없어 보이기도 한다. 예전 시대에야, 자식들 생각해서라도, 혹은 남에게 흉 보이기 싫어서, 혹은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다들 그저 꾹꾹 눌러 참고 살았다.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시대가 변한 덕에, 무조건 참고 살기보다, 가족 유지를 위해 희생하고 복무하기보다 개인의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억지로 힘들게 사는 모습보다는 독립적인 성인으로서 당차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도 작용하는 것 같다.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그런 서사를 담고 있다. 부부간에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서로 맞지 않는 짝이어서 그렇다. 억지로 잘 살려고 애쓰기보다 정 문제가 될 때는 단호하게 끊고 서로 잘 맞는 짝을 찾아 나서는 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호랑이 눈썹처럼 신령한 물건은 갖고 있지 않지만, 끊임없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저 상대가 나와 잘 맞는가, 그렇지 않은가 재고 따지는 일을 은연중에 계속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부터 어떤 상대에게 확 빠져드는 일을 경계한다. 어떤 사람일지 모르니까. 그러다 보니 의심과 불신이 늘 인간관계에 개입한다.

비단 부부 관계뿐일까. 어떤 관계든 한번 관계가 맺어지고 나면 어느 정도는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게 마련이다. 요새는 SNS를 통한 소통도 많아진 세상이라, 그 관계란 것은 실제로 대면하는 관계만 이르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글과 이미지로만, 게시글과 댓글로만 소통하는 관계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인간관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요새 자주 보이는 글 중에 온라인 친구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이 있다. 나와 잘 맞고 통하는 친구들과 소통하며 즐겁게 살기에도 바쁜 세상에, 내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심지어 나와 노선 자체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논쟁하면서 에너지 낭비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다.

이런 태도에 저 ‘호랑이 눈썹’의 서사가 깔렸다. 나와 맞지 않는 상대와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래서 그 관계에 깔려 나는 기를 펴지 못하고 내가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에도 소홀하게 되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러다 보니 상당히 피곤하다. 이렇게 피곤하게 관계에 몰입하느니 차라리 그 관계를 끊겠다. 이게 ‘호랑이 눈썹’의 서사이다.

온라인상의 관계에서는 맺고 끊는 것이 버튼 하나 클릭하는 것으로 쉽게 이루어지니 그 결정을 단호하게 실행하기에 좋다. 그리고 내 글에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고 소통하고, 취향과 의견과 목적을 함께하는 이들과 어울리는 데 더 주력한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분별에 몰입하기보다 성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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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르고 잘 맞지 않는 상대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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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맞지 않는 짝과 힘들여 투쟁하느니 아예 관계 자체를 끊어버리는 일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며, 그 사람과의 관계 말고도 우리에겐 신경 써야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다. 세상엔 즐거운 일들도 넘쳐나고 좋은 사람들도 조금만 둘러 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생각해 본다. 우리 손에 호랑이 눈썹이 들려 있다면 우리가 그걸 대고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에서 말하는 호랑이 눈썹이란, 전생을 보여주는 영물(靈物)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그것이 보여주는 바는 좀 더 본질적인 것이지 않을까. 우리가 호랑이 눈썹을 대고 찾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냐, 닭이냐 하는 분별이기보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지 않을까.

나와 다르고 잘 맞지 않는 상대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하다. 소위 기 빨리는 일이기도 하고, 굳이 그럴 여유도 사실 없기도 하지만, 나와 같고 잘 맞는다고 여겼던 상대에게서도 사실은 상상도 못 했던 면모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쪽저쪽으로 갈라져서 서로 추종하는 그 대상들에게는 호랑이 눈썹을 제대로 들이대고 있는지 궁금하다. 따지고 가르는 분별에 몰입하면서 정작 놓치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호랑이 눈썹’을 넘어서는 서사는 어떤 것일지 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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