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2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사회는 진보하고 번영은 계속된다는 헛구호에 속지마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따끈따끈 새책]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머니투데이

우리는 진보와 변혁의 희망을 담은 진짜 민주주의에 사는 걸까, 아니면 신권위주의로 포장된 가짜 민주주의에 사는 걸까. 소셜 미디어 시대에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진의 역시 물음표로 찍힐 수밖에 없다.

저자가 주요 예시로 드는 러시아 권력자의 그간 행보를 보면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에 살고 또 어떻게 농락당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러시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들이 자신의 부와 생명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관리·통제하기 위해 찾아낸 새 지도자는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1999년 2% 불과한 지지율로 선거에 나선 푸틴은 TV 출연, 투표 조작, 테러와 전쟁 분위기를 등에 업고 손쉽게 권력을 장악한다. 법적으로 3선 연임이 불가능 해 메드베데프에 잠시 정권을 맡긴 뒤 헌법 개정을 통해 푸틴은 복귀한다.

푸틴은 20년간 장기 집권을 위해 여러 타개책을 내놓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옛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이 유럽 연합에 합류하는 것을 막고 러시아 제국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 민주주의를 확립한 우크라이나는 유럽 연합 가입을 염원하고 있었는데, 러시아는 누가 침공했는지 알 수 없는 표식 없는 군복 차림으로 공격하며 ‘내전’으로 포장했고 가짜 국민투표로 독립 선언과 병합을 추진한 뒤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무엇보다 트위터 봇과 인터넷트롤을 이용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국내외 여론은 물론, 우크라이나 국민들까지 교란시키는 데 성공했다.

‘달콤한 맛’을 본 러시아가 그다음 진격지로 선택한 대상은 유럽 연합이었다. 2016년 베를린에서 13세 러시아계 독일 소녀가 난민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다는 가짜 뉴스가 나오자, 연간 50만명의 난민을 독일에 받아들이겠다는 메르켈 독일 총리의 선언이 위험에 놓였다.

앞서 2015년 영국의 브렉시트 논의에서 3분의 1 정도가 봇에 의해 작성됐고 정치적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는 봇의 90% 이상(트위터 계정 419개)이 러시아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에 의해 이뤄지면서 탈퇴 찬성 52%를 달성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유럽 연합을 파괴하려는 형태로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유럽 지도자들과 정당을 박탈하고 △유라시아를 홍보하기 위해 극단적 민족주의자와 파시스트를 발탁하고 △온갖 종류의 분리주의를 지지했다.

더욱 정교해진 가짜 뉴스와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로 불리는 사이버전의 인터넷 여론 조작 방식은 결국 민주주의의 심장인 미국으로 향했다.

2004년 파산한 트럼프에게 유일하게 대출해준 은행이 도이체방크였는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러시아 고객들을 위해 100억 달러 정도를 세탁해준 곳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2015년 10월 러시아인들이 모스크바에 고층 빌딩을 세우고 자기 이름을 붙이게 하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그해 6월 트럼프가 후보로 출마했을 때,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는 100명가량의 미국 정치 활동가를 끌어들이며 러시아 비밀정보부와 함께 ‘피자게이트’ ‘정신 요리’ 등 힐러리를 겨냥한 가짜 뉴스를 생성해 소셜미디어에 퍼뜨렸다.

선거가 끝난 후 트위터는 러시아 봇 5만개를 찾아냈고 3814개 계정이 러시아의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에서 가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트위터는 “이 계정들이 140만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했다.

저자는 트럼프 당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유럽 연합에서 실험한 사이버전을 얼마나 정밀하게 발전시켰는지, 노련하게 다루게 되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 소셜미디어 시대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교란될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는지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고 설명했다.

책은 2012년 푸틴의 장기 집권 수립,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16년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까지 과정을 훑으며 러시아가 민주주의로 가장한 신권위주의를 어떻게 부활했는지 조명한다.

선거는 이뤄지지만 투표는 조작되고 침공은 이뤄지지만 전쟁은 부인하고 언론은 실재하지만 국가가 통제하는 신권위주의가 민주주의라는 포장된 이름으로 재연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는 진보하고 번영은 계속된다’는 근거 없는 확신인 ‘필연의 정치학’에 매몰 될 때 영광스러운 과거(실제로는 처참한 과거)에 대한 갈망을 이용해 국가를 지배하는 ‘영원의 정치학’에 쉽게 이끌린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가짜 뉴스가 몰아치고 현재의 불평등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엄습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로 가장한 권위주의에 이끌리기 쉽다”며 “결국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의식’에 해답이 있다”고 말한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 부키 펴냄. 456쪽/2만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