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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기홍 칼럼]文, 확 안 바뀌면 제2, 제3 조국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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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로 드러난 친문진영 민낯

위선, 뻔뻔함, 쌍스러움, 찌질함… 진영 틀 깨고 준거집단 바꿔야 할 대통령

조국 사퇴시키면서 느닷없이 언론 비판

성찰이 언론 몫인지, 대통령 몫인지…

동아일보

이기홍 논설실장


문재인 대통령도 많이 놀랐을 게다. 조국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뒤 드러난 그의 실체에 많이 놀랐겠지만, 14일 그를 경질하고 난 직후 또 한번 놀랐을 것이다.

대통령이 사직서에 사인을 한 지 22분 만에 서울대에 복직신청을 하고, 다음날 자신의 사직을 ‘영웅의 퇴장’처럼 묘사한 ‘조국 법무부 장관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만큼 ‘담대한’ 인물일 줄은 문 대통령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남들 같으면 두 번째 복직신청을 하는 것도 망설였을테고, 설령 신청한다해도 신청기한이 한달이므로 며칠 말미를 두고 세간의 시선이 좀 잠잠해진 뒤 냈을 것이다.

굳이 그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다만 수오지심과 사양지심 차원에서 상식 수준과는 너무도 다른 특이한 의식구조라는 정도로 넘어가자.

정말로 중요한 대목은 문 대통령이 조국 사태를 통해 민낯을 드러낸 친문 세력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는지다.

법무부 인권국장, 검찰개혁추진단장이라는 고위직을 맡고 있는 민변 출신 변호사의 저잣거리 주정뱅이들의 싸움에서도 듣기 어려운 수준의 과거 SNS 글들과 험한 입은 권력 주변 좌파인사들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시민 등 ‘책사’들도 처참하게 밑천을 드러냈다. 그들은 연일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냈지만 궤변의 신기록만 경신했을 뿐, 아무런 설득력도 참신한 논리도 통찰도 담지 못했다. 그들이 이번에 유일하게 새로 드러낸 특질은 찌질함이다.

유시민은 조국사태 초기부터 “조 후보자만큼 모든 걸 가질 수 없었던 소위 명문대 출신 기자들이 분기탱천한 것”등의 발언으로 난데없이 열등감 코드를 들고나왔는데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노출시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더니,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는 검사가 여기자를 좋아해서 (피의사실을) 술술 흘려줬다는 패널 발언이 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일련의 흐름들의 키워드는 열등감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좌파권력의 떡고물을 기대하며 살아온 자들의 수준을 봤을 것이다. 자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민주화 투쟁 때는 몸을 사리다가 뒤늦게 민주투사로 자처해온 인사들의 위선도 봤을 것이다.

친문 세력은 진영의 이익을 위해서는 공정, 정의 등 진보의 가치는 언제든 내던질 수 있는 집단임을 천명했다. 가치연대가 아니라 이권연대, 이익연대에 불과함을 드러냈다.

그들은 대중의 분노를 불지펴 동원해내고 프레임을 만드는 투쟁 단계에선 유능하지만 막상 정책실행이나 관리능력에선 미숙하기 그지 없다. 대중적 갈증과 분노를 기반으로 집권했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어낸 정책들이 실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게다가 이번에 그들은 궁극적 관심사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아니라 정권 재창출을 통한 권력유지임을 드러냈다. 지난달 9일 조국 임명 강행 직전 문대통령이 고민할 때 내각과 청와대 일부에서 원활한 국정운영과 중도층 확보를 위해서는 조국을 포기해야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여당 지도부와 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임명 강행을 강력히 건의했다. 그들에겐 원활한 국정운영 보다는 정권 재창출의 바탕이 될 핵심 지지 세력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문 대통령은 임기 중반도 넘기기 전에 9회말 위기의 투수 같은 곤경에 처했다. 다만 한때 후계자로 고려했을 조국, 그리고 ‘영남 후보 필승론’에 따라 조국과 더불어 거론됐던 유시민의 허상을 미리 알게 된 건 문 대통령에게도 결과적으론 다행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당연히 대통령이 택해야 할 코스는 진영정치에서의 탈피, 친문 수장 역할에서의 탈피, 그리고 준거집단을 중도를 아우르는 국민 대다수로 넓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조국 사퇴 직후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느닷없이 언론을 비판한 대통령을 보면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비관론이 생긴다. 언론의 검찰발 받아쓰기에 조국이 억울하게 당한 측면이 있다는 뉘앙스가 풍기는데, 역대 어느 대통령도 민의에 밀려 백기를 들면서 이런 원망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동아일보가 8월 20일자 1면에 특종 보도한 ‘고교 때 2주 인턴 조국 딸, 의학 논문 제1저자로 등재’ 기사 취재 기자의 취재기를 소개한다.

“조 장관 내정 소식을 접하고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아이의 행복을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는 조국의 과거 발언이 떠올랐다. … 조 장관 딸이 인터넷 유료 사이트에 올린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등을 8만4500원을 주고 샀다. 자기소개서에는 ‘단국대 의료원 의과학연구소 소속 인턴십의 성과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고교 재학생이 의학논문 저자가 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에 학술 논문 사이트를 뒤져가며….(중략)”

몇 주동안 수백 편의 논문을 뒤지고 병리학전문가와 공동저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녀 조각조각의 팩트들을 모아 건져낸 기사였다.

문 대통령은 언론에 깊은 성찰과 개혁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말 성찰하고 기존의 틀에서 빠져 나와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다. 그러지 않으면 좌파 이익연대 세력들은 자신들의 잇속을 계속 보장할 인물을 또다시 들이밀 것이고 제2, 제3의 조국이 생길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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