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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정민의 시선] 조국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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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시민들

대의민주주의 보완 필요 대두

‘총리 국회 선출’ 개헌 논의해야

중앙일보

이정민 논설위원


‘66일간의 막장 드라마’ 조국 사태가 일단락됐다. 애당초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선택한, ‘무모한 도전’은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의 지지율 동반 하락의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조국의 문제’를 ‘집권세력의 문제’로 치환·확장시킨 건 정치적 무능력 아니면 오만 때문이다. 조씨가 궤변과 위선적 언행으로 비리 의혹을 교묘히 은폐하고, 국민 편 가르기로 분탕질하는 동안 청와대와 민주당은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국민들 가슴을 멍들게 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음에도 조씨의 석고대죄를 요구하는 목소리 하나 없었다.

결국 문 대통령이 뒤늦은 사과를 해야 했다. 그는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하고 사회가 큰 진통을 겪게 해 매우 송구스럽다”고 했다. 조국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나쁜 선례를 남긴 것에 대한 사과인가. 그렇다면 그런 의사결정을 내린 과정을 복기해 봐야 할 것이다. 참모들로부터 양질의 보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 주변부터 돌아봐야 한다. 주말 집회를 “국론 분열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이라고 했다가 역풍을 부른 데 대한 사과였다면, 지금이라도 광장의 함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불통이 빚어진 원인을 찾아 정비하고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견고한 장치나 제도의 정비를 지시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진 몰라도, 대대적인 국정 쇄신과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바꿀 것이란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대신 검찰개혁·언론개혁 주문이 요란하다. 지난 66일의 갈등과 진통이 출세욕에 눈 먼 정치 검찰과 언론의 과잉 보도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고도 시민들이 울리는 경고등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민심의 나침반이 고장난 정권의 불행한 말로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됐지만 독선과 독주의 국정 운영, 불통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제도(institution)’라는 헌법정신을 훼손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에게서 국민들이 위임했던 권한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되는 게 ‘한국식 대통령제’의 치명적 결함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이 덫에 걸려 시련을 겪었다. 여러 대통령을 가까이서 관찰했던 ‘영원한 2인자’ 김종필 전 총리의 일갈이다.

“대통령은 군과 정보, 사정 권력을 틀어쥐고 행정부의 전권을 행사한다. 집권당과 국회를 움직이며 대법원장 임명권 등 사법부에까지 미묘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게다가 절대권력자 앞에서 그의 생각에 거스르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다 옳다는 독선과 독단에 빠지기 쉽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김종필 증언록』, 중앙일보)

조국 사태는 권력의 독주와 독선이 ‘사람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에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뿔난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나올 때까지 여당도, 야당도 속수무책이었던 건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제 고장난 시스템을 손볼 차례다. 우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는 현행 헌법 조항을 ‘국회가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행정부의 2인자인 총리가 동시에 국회의 지지도 받게 돼 대통령과 국회의 소통과 대화가 원활해질 것이다. 야당과의 협치를 이끌어낼 수도 있게 돼 정치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더 이상 시민들이 촛불을 들지 않고도 민의를 효율적으로 수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총리의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2의 조국’이 나오는 걸 막을 수 있다.

2016년의 촛불혁명은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줬지만, 시스템을 바꾸는 것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이제 ‘미완의 혁명’을 마무리지어야 할 때다.

조국 사태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조국 사태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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