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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청소년이 삭발? 자발적으로 한 것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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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기특하다'는 칭찬도 '선동당했다' 의심도 거부한다

청소년들이 시위를 벌이거나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으레 따라붙는 반응들이 있다.

"청소년들마저 나섰다니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이 어린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기특하다, 당차다, 대견하다!"

이런 반응들은 모두, 청소년의 정치적 발화는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일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한 가지 전제는 '청소년들은 원래는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국이 워낙 심각해서 이들조차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하는 한편, 청소년의 참여 자체가 해당 운동의 순수성 내지는 '비정치성'을 증명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다른 전제는 '청소년들은 원래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발화에 나선 주체들은 (일반 청소년이 아닌) 특별한 존재들이라 그렇게 나설 수 있었다고 간주하는 경우다.

청소년들의 사회 참여는 종종 칭찬을 받곤 한다. 박근혜 퇴진 촛불 당시, 집회에 나갔다가 기특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청소년들의 사례를 여러 번 접할 수 있었다.

'기특하다'라거나 '대견하다'는 등의 표현은 자신을 윗사람으로 간주하고 상대를 평가할 때 나올 수 있는 표현이다. 청소년의 정치적 발화에 우리 사회가 반응하는 방식의 특징이 여기에 있다. 존경하기보다는 감탄하고, 감화되기보다는 평가한다.

'청소년'이 말한다고 감탄하지 말고, 그 '말'에 귀 기울이라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시위에 나선 모습은 인상적인 장면으로 여겨지지만, 그와 동시에 이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상대적으로 흐릿해진다. 청소년이 정치적 발화를 할 때면 발화의 내용보다는 말하고 있는 청소년의 존재, 그 모습이 기억될 확률이 높다. '기특하게 여기지 말고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청소년의 요구에, '그렇게 요구를 하다니 너무 기특하다'는 평가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가능한 이유다.

때론 청소년의 정치적 발화를 특별하게 여기는, 다시 말해 청소년은 원래 말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고 간주하는 사회적 편견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할 여지도 있다. 일례로 2018년 국회 앞에서 벌어졌던 청소년들의 선거연령 하향 요구 삭발은 큰 관심을 받았다.

삭발까지 나서는 노동자들, 장애인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날 청소년들의 삭발은 화젯거리가 됐고, 주요 뉴스 채널들에 대부분 보도됐다. 선거연령 하향이라는 요구사항 때문에 이슈가 된 게 아니라, '청소년이' 삭발했기 때문에 이슈가 됐다.

청소년들이 권리의 주장과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위해 삭발까지 감행했다는 점이 충격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삭발했던 당사자들은 직접적인 질문도 많이 받았다. "청소년인데도 어떻게 삭발까지 해요?" "누가 시킨 거 아니고 자발적으로 한 거 맞아요?" 같은 것들이다. 결국 이들이 삭발을 한 행위는 청소년이 삭발시위에 나설 수 없는 존재라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일인 동시에, 우리가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취지와도 맞닿은 행위였던 셈이다.

청소년의 말이 기특하게 여겨지지 않는 순간

청소년의 정치적 발화, 또는 정치적 발화를 하는 청소년의 존재가 특수한 사례로 여겨지고 관심과 칭찬을 받는 현상은, 한편으로는 청소년의 말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이다. 청소년에게는 정치적 발화의 가치를 평가할 권한이 없고, 이러한 권한 박탈의 대표적인 예시는 '19금 참정권'이다. 한편 '어른'들에게는 청소년을 쉽사리 평가할 특권이 주어진다.

어른들은 자신이 동의하는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은 '기특하다'고 칭찬하고, '청소년들마저 나섰으니 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가' 논평한다. 한편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주장을 하는 청소년들은 '어려서 뭘 모른다' 거나 '선동당해서 저런다'고 규정한다. 이 역시 청소년이 말하는 '내용'보다는 그 말을 하는 '주체'에 집중하는 반응이다.

청소년의 말이 더 이상 기특하게 여겨지지 않는 순간을 꼽는다면 '청소년이 자기 권리를 주장할 때'를 예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일은 청소년답지 못하고 학생답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며, 청소년에게 허용되는 말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할 건지 말 건지, 체벌을 금지할 건지 말 건지, 셧다운제를 폐지할 건지 말 건지 등을 논의할 때 청소년으로서 청소년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위아래도 모르는 것들' 취급을 받곤 한다. 욕설을 한 것도 아니요 반말을 한 것도 아닌데, 단지 자기 권리를 주장했다는 것만으로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한 것이 된다. 청소년은 원래 말할 수 없고 말하지 않는 위치여야 하는데 청소년답지 않게 그 위치를 벗어났으니 불쾌한 것이다.

'말하는 청소년'에 대한 특별한 취급은 차별이다

따라서 청소년의 정치적 발화가 특별하게 취급받고 때론 칭찬도 받는 경우는, 어른들이 허락한 사안에 대해 허락한 범위 내에서 이뤄졌을 때만 허용되는 예외구역에 가깝다. 앞으로 청소년이 권리를 보장받고 동등한 지위를 누리게 될수록, 청소년의 말하기는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고, 말하는 주체에 대한 칭찬이나 비난 대신 말하는 내용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요즘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UN 연설이 화제다. 열여섯 살 '소녀'가 연설을 한다는 것에 감탄하기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그의 경고에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기자 : 쥬리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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