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 룰(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경우 공시하도록 한 제도)을 완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달 입법 예고한 후 경영계와 정치권에서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는 잇따라 개정안의 전면 철회를 건의하는 의견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했고 자유한국당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해 제동을 걸었다. 5% 룰 완화안의 핵심은 기관투자가의 주주권을 손쉽게 행사하도록 한 데 있다. 기존에 경영개입 행위로 간주된 이사 직무정지·해임 요구, 투자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변경 추진, 배당 관련 활동 등을 경영권과는 상관없는 주주의 기본권리로 인정해 보고·공시 부담을 덜어줬다. 이는 국민연금이 기업의 경영을 간섭하도록 길을 트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302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이들을 대상으로 이사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경영권은 심각하게 침해받는다. 경제단체가 “국민연금은 사실상 어떤 제약도 없이 집중투표제 도입 등의 정관변경 주주제안과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등이 가능해진다”며 5% 룰 완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하위법령인 시행령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김종석 한국당 의원이 시행령의 해당 규정을 상위법에 담도록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잘못된 법 체계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돈을 벌어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중이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 기업의 14.2%로 전년보다 0.5%포인트 상승했고 한계기업으로 전락할 기업도 19.0%에서 20.4%로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5% 룰을 강화해 기업 경영권을 보호해주기는커녕 완화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미 지난해 도입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만으로도 힘들어하는 기업들에 경영권 침해 폭탄을 하나 더 안긴다면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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