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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10)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꼭 말해야 하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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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대화가 자연스러운 사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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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서 대화를 하면…

죽으면 소멸한다는 생각서 벗어나

가족 등 함께한 사람들의 삶에

내 삶이 이어지도록 할 수 있어

유산 정리 등 현실적 준비 기회도


|어떻게 말을 꺼낼까…

갑자기 ‘죽음’을 말하기 힘들다면

가족 사진첩을 꺼내보면서

행복했던 추억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건 어떨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르신들은 “빨리 죽어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고 험한 꼴을 보이기 싫어서다. 복지국가에서는 빨리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다. 국가와 병원이 끝까지 연명시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다. 그래서 지금은 “잘 죽어야지”라고 말한다.

웰다잉이 대세다. 하지만 나이에 따라 다른 조짐을 보인다. 70대까지는 웰다잉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80대로 들어서면서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죽음이 직접적 문제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죽음은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 자연스럽다. 오죽하면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했을까? 지금 기대수명이 82.7세이고 얼마 안 있어서 100세까지 살 것으로 기대하지만,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죽음이기에 말해야 한다. 죽음이 머지않았다고. 고통 없이 비참하게 죽지 않고 ‘잘’ 죽으려면 자신의 죽음에 관한 대화를 해야 한다.

■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

인간은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정작 위기상황에 몰리면 감성적으로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말이다. 질병이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악화되면 1년 내 혹은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시점이 온다. 필요한 정보가 환자에게 공유되지 않으면 두려움으로 마음이 흔들린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막연한 심정 때문에 환자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평소 이성적일 때 죽음에 대한 대화를 해둬야 한다.

한국에서는 막상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대부분 가족이 결정한다. 환자에게 감추더라도 아무도 ‘자율성 존중’을 침해했다고 문제 삼지 않는다. 환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죽음에 관해선 자율성 존중 무시가 관행이 된 지 오래다. 최근 연명의료결정법이 생겼어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자신이 뭘 원하는지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작별인사도 못한 채 기계에 매달려 그토록 원하지 않았던 비참한 최후의 전투를 치르게 된다.

사람들은 치명적인 질병의 과정이 아니면 노화로 죽는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 우리 문화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 금기다. 사망이 임박한 순간까지도 환자나 가족, 의사조차 종종 모른 척한다.

환자 사망을 수없이 지켜보고 죽음에 대한 연구와 생각을 많이 해온 필자조차도 죽음, 그 미지의 것 앞에서는 두렵다. 두렵기 때문에 포기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 성찰하고 인생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자. 시작이 두려움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의사, 간호사, 소방관들은 종종 사망을 목격하기 때문에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일반인에 비해 두려움도 적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엄연한 진실 앞에서 좀 더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누군가는 절망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누군가는 생의 완성으로서 받아들일 것이다.

■ 죽음에 관한 대화는 긍정적 효과 있어

죽음은 고통이라며 두려움을 가진 사람은 임종과정에서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찾는다. 삶의 완성으로 기억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인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선호하지 않는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평소 생각을 공유하고 재산, 유언 등 주변 정리나 마무리를 위한 것이다.

죽음은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일이기도 하다. 가족은 임종의료에 대해 환자를 대신해 최종 결정한다. 임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각종 검사와 시술,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입원, 호스피스 등을 말한다. 연명의료결정에 대해 환자와 입장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미리 가족들과 죽음한 대화를 나눠야 실제 응급상황에서 가족들이 환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별 가족들은 환자와 죽음에 관한 대화를 나눴던 경우 환자가 좋은 죽음을 맞이했고 양질의 임종의료를 받았다고 말한다. 진실을 알린 뒤에야 환자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족들이 알게 되고 그에 따를 수 있다. 어머니를 여윈 50대 여성의 말을 들어보자.

“환자 본인이 자신에게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사후장례에 대해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자식 된 입장에서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 수 있었던 점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호스피스에도 더 일찍 옮길 수 있다. 호스피스에 입원한 환자는 적극적인 통증 관리와 정서적 지지로 고통이 적고 죽음에 대한 준비도 잘 받아 더 나은 삶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가족들도 사회적 지원을 받고 환자와 친밀하고 진실한 대화를 나누며 인생 여정의 끝까지 잘 준비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꺼려진다. 평소 바빠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생각조차 해 본 적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은 죽음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아닌 젊은 사람들도 있다.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어색하다. 죽음에 관한 대화는 죽으면 모든 것이 소멸하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함께한 사람들 삶 속에 이어질 것이며 삶의 완성으로서 기억될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재평가하고 가치를 높이며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보게 한다. 죽음의 의미와 필연성을 인정하는 사람이더라도 막상 가족이 죽음을 마주할 때 부정하려 하거나 언급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인생 마지막을 위한 가족들과의 대화는 한 번은 꼭 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 죽음에 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들에게 무척 힘든 일이다. 일상생활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가족들 사진첩을 꺼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사진들을 보면서 삶의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 순서다. 기회를 봐서 최근 세상을 떠난 친척이나 지인에 대한 추억을 상기해 보자. 돌아가신 장소가 집이었는지, 병원이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연명의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수 있다. 이때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을 할까…

보고 싶은 사람, 가보고 싶은 곳

미리 말해두면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졌을 때

사랑하는 가족들이 당황하지 않고

당신의 마지막 뜻을 이을 수 있어


|어디서 말하면 좋을까…

사전연명의향서를 쓰고 싶다면

가족과 함께 가서 써보자

죽음에 대한 생각 나눌 수 있어


평소 환자의 목표가 무엇인지, 뭘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다. 우선순위도 알 필요가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미리 생각할 때,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이며 원하지 않는 치료는 어떤 것인지 미리 밝히는 것은 필수다. 그때가 오면 보고 싶은 사람들, 가보고 싶은 곳들에 대해 가족들이 알고 있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그날이 오면 가족들이 진실을 감추지 않고 당신의 마지막 뜻을 어떻게 실행할지 계획을 세우기 위해 상의할 것이다.

조심할 것 중 하나가 어느 정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준비 정도와 감정 상태에 맞춰야 한다. 아직 준비돼 있지 않다면 다음 기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늦추게 되면 기회를 놓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현행법에 따라 누구나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한 설명을 받을 수 있다. 이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다. 가족과 함께 가면 더 좋다. 다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만 상담받을 수 있다. 등록기관은 지역보건의료기관, 의료기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법인 또는 단체, 공공기관으로 한정돼 있다. 지난 9월 초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이를 노인복지관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노인복지관도 시설·인력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했다. 노인세대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는 의도다.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며 꼭 입법화돼야 한다.

■ 죽음에 관한 대화 기회를 3번 주자

건강 악화와 사망에 관한 대화를 보다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죽음의 문제에 대해 말하기 좋은 곳은 역시 의료기관이다. 국민 누구나 언제든지 의료기관을 찾아 죽음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하자. 세 번의 기회를 모든 국민에게 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건강할 때, 두 번째 중증질환 진단 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기 진단 시 죽음에 관한 대화를 하도록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자. 가장 밀접한 건강보험에서 급여화하면 가능하다.

먼저 건강검진을 받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상담 의향을 묻도록 하자. 상담할 때 죽음에 관한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 건강검진을 수행하는 모든 의료기관들이 등록기관으로 지정을 받으면 된다. 병원에서 활용할 교육자료도 만들고 표준화된 진료지침도 필요하다. 물론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이 죽음에 대한 의사소통 훈련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사전의료계획 상담의 적정 수가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국민 59%가 10만원 정도, 의사들 65%가 20만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1회에 30분, 10만·20만원 정도의 수가를 적용해볼 만하다. 건강할 때, 중증질환 진단 시, 말기 시, 3번을 해도 많아야 60만원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줄어들고 호스피스 이용이 늘어날 것이다. 의료비는 절감되고 죽음의 질이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호스피스를 이용할 경우 사망 전 6개월 의료비가 520만원 절감된다. 이쯤 되면 국민의 웰다잉에 무심한 정부라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기를 바란다.

두 번째가 암을 진단받거나 심장질환 혹은 뇌질환 등 중증질병으로 입원하는 경우다. 최상의 치료를 받고 최선의 결과를 기대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임종에 관해 대화를 시도해 볼 기회다. “살고자 하는데 왜 죽음을 입에 담는가?”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죽고자 하는 김상헌에게 한 말이다. 삶을 위한 최선의 치료를 이야기해야 할 때, 치료가 실패했을 때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가? 말하지 않다가 너무 늦어지면 자신의 희망을 표현할 기회가 없을 수 있다.

치료가 불가능한 시점에 대비해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미리 이야기하고 생각해 보게 하는 역할은 담당의사가 가장 적절하다. 의료윤리적 측면에서도 환자에게 진실을 알려야 할 당연한 의무도 있다.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 좋다. 시작은 불편하지만 대화를 끝내고 나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환자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게 되고 의료진과 협조해 환자가 남은 시간을 편안하면서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필자는 진행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전돌봄계획에 대한 동영상과 책자로 구성된 교육자료를 통해 임상시험을 했다. 임종의료에 대한 태도에 긍정적 효과가 있었고 환자의 불안이나 우울이 더 악화되지도 않았다. ‘최상을 희망하되, 최악을 대비’하기 위한 의지의 문제다.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접근성 좋은 노인복지관 등에서도

사전연명의향서 작성 법안 추진 중

호스피스 선택할 기회 안 주는 건

삶을 완성하려는 희망 빼앗는 것

죽음의 질 향상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공론화 더 활발해져야


더 이상 치료가 효과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을 때 혹은 삶이 수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때라면, 마지막 죽음의 대화를 나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용서하고 화해하며 감사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가능한 한 빠를수록 좋다.

치료는 중단돼도 환자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적인 돌봄과 호스피스는 계속돼야 한다.

의료진이 수술이나 항암치료가 최선일 때 설명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윤리적 책임을 넘어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삶이 수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최선인 호스피스를 선택하고 이용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이 역시 책임을 의료진과 정부에 물어야 한다. 죽음의 참담함을 넘어 자신에게 남은 생을 정리하고 삶을 완성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환자의, 국민의 희망을 빼앗은 것이다. 죽음의 질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더욱 광범위하게 공론화돼야 한다. 국민들에게 죽음의 현실과 진실을 정확히 알리고 국민적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한 범국민적 캠페인과 교육이 필요한 때다.

▶윤영호 교수는

경향신문

중1 때 누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시자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본과 4학년 때 자원봉사를 하면서 호스피스를 알게 되어 호스피스를 전공으로 택해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를 마쳤다. 2000년 국립암센터 설립 초기부터 참여해 삶의질향상연구과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옮겼으며 건강사회정책실장, 연구부학장,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역임했다. 최근 설립된 웰다잉시민운동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윤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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