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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기고]유기동물 사설보호소 규제는 ‘미봉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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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철거된 사설 유기동물보호소 ‘애린원’에서 구조된 강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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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사설 유기동물보호소 중 국내 최대 규모로 알려진 애린원에 대한 강제철거가 집행됐다. 20여년 전 원장 공모씨가 사비를 털어 유기견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으로 출발한 애린원은 1000마리가 넘는 개체수, 열악한 사육환경, 후원금 유용혐의 등으로 오랜 기간 논란의 대상이었고, 결국 타 동물보호단체가 애린원이 무단점유하고 있던 보호소 부지를 임차해 명도소송을 제기하면서 철거됐다.

지난해 말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유기견 안락사 사건’ 이후 사설보호소에 대한 규제 필요성 논의가 시작되었고,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사설보호소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들을 제도권 내로 편입시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사설보호소의 보호가 학대에 이르는 수준이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대비책은 강구할 수 있겠으나, 사설보호소를 제도권 내로 편입시키는 것에 마냥 찬성할 수만은 없다.

보통 제도권 편입은 그 설치와 운영에 대해 법령상 근거를 만들고 등록이나 인허가를 요하는 것에서 출발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등록을 위해 갖춰야 하는 요건을 법령에 규정해야 하고, 운영기준과 수검의무, 위반 시 처벌이나 제재 규정의 적용도 받게 된다. 현재 공공보호소에 대한 규제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시행규칙이 정하는 시설기준을 갖추고 이를 증명하는 자료 및 건물, 시설, 인력현황, 보호조치 실적에 대한 서류를 제출해 지자체장으로부터 동물보호센터로 지정을 받아야 하며, 지정 후에는 연 2회 이상 점검을 받게 돼 있다. 그리고 농식품부 고시인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에서는 동물보호센터가 갖추어야 할 조직 및 인력, 시설기준, 예산 및 결산서 제출의무, 동물의 포획, 구조, 운송방법 등 보호조치 방법, 질병관리 방법, 분양방법, 인도적인 처리(안락사) 절차를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약 사설보호소를 규제한다면 이와 유사한 틀에서 조금 완화된 기준으로 규정을 만들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지금과 같이 유기동물 숫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근본적 해결책 없이 규제가 생긴다면, 오히려 사설보호소가 사라지고 안락사가 증가하는 효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무단 안락사, 동물학대, 후원금 횡령 등 사설보호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외부로 많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 이익 없이 버려진 동물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일상도 포기한 채 보호소를 꾸려나가는 이들도 있다. 동물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사료비나 병원비가 없어서, 중성화 수술비용이 없어서, 일손이 없어서, 그렇게 사설보호소의 열악한 환경이 시작된다.

묻고 싶다. 이들의 잘못을 과연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지. 해결 방법이 과연 사설보호소 규제를 신설하는 것인지. 사설보호소를 규제, 지원하는 데 투입할 재원이 있다면 공공 동물보호센터를 확대하고 사육환경을 개선하면 안되는지. 보호소를 줄일 것이 아니라 번식장과 펫숍을 줄이고, 무분별한 구조 대신 무분별한 유기를 더 강하게 처벌하면 안되는지.

경향신문

동물들은 우리에게 말해줄 수 없다. 길에서 떠돌다 죽는 삶과, 열악하지만 보호소에서 생을 이어가는 삶과, 고통받을 바에야 안락사당하는 삶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지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선택지에 만약 ‘집과 가족이 있는 삶’이 있다면 그들이 무엇을 선택할지를. 애린원 동물들에게도 어쩌면 그 삶이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의 손길을 내민 것은,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민간 동물보호단체였다. 부디 그 희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소 규제라는 미봉책 대신 무분별한 생산판매와 유기를 막는 근본적 정책을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김슬기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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