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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조국 사퇴로 본 역대 법무장관 임기··· 평균 421일·최장수 125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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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장관직을 내려놓습니다.”

세계일보

조국 66대 법무부 장관. 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법무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지난달 9일 제66대 법무부 장관 취임 후 자녀 ‘스펙밀어주기’·사모펀드 논란 속 35일 만이다. 조 전 장관의 재임 기간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58명의 역대 법무부 장관(연임·재임명 등 중복자 제외) 중 6번째로 짧았다.

◆역대 장관 58명…평균 근무일수 421.11일·최장수 장관은 16∼18대 민복기

16일 세계일보가 1948년 8월 취임한 초대 이인 전 장관부터 최근 물러난 조 전 장관까지 역대 법무장관 58명의 근무 기간을 전수 조사한 결과, 평균 재임기간은 421.11일로 나타났다.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사람은 박정희 정권(직무대행) 시절인 1963년 4월 제16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판사 출신 민복기 전 장관이다. 민 전 장관은 1966년 9월까지 17, 18대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하며 1253일, 약 3년 6개월을 법무장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법원·검찰의 수장(首長)을 모두 역임한 특이한 이력도 갖고 있다. 1938년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대 법학과를 졸업, 이듬해 39년 경성지법 판사로 법조계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검찰로 옮겨 1950년대 검찰총장을 역임했고, 1963년부터 법무부 장관도 지냈다. 그 뒤 1968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약 10년간 5, 6대 대법원장을 지내며 한국의 최장수 대법원장으로도 기록됐다.

세계일보

민복기 16∼18대 법무부 장관


다만 민 전 장관은 1971년 ‘제1차 사법파동’ 당시 대법원장으로서 후배 법관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검찰이 시국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많이 내린 법관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에 판사들은 집단 사표를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민 전 장관은 대법원장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 해결을 시도하려 했으나 면담에 실패했다. 그는 1973년 대법원장 신년사를 통해 “나라의 통일과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구조가 가장 집중적·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게 유신헌법의 본질인 이상 사법권의 존재 양식 또한 이에 발맞춰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 전 장관보다 임기 짧은 법무장관 5명…최단기 장관은 50대 안동수

조 전 장관보다 더 빨리 법무장관 자리를 내놓은 사람도 5명이나 된다. 이 중 임기가 가장 짧은 불명예를 기록한 사람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1년 5월 제50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안동수 전 장관이다. 검사 출신 안 전 장관은 근무일수가 3일로 역대 장관 중 최단명(短命)의 기록을 세웠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국무회의엔 참석했지만, 법무부에선 제대로 업무보고도 받지 못한 채 퇴진했다.

그가 퇴진한 배경은 안 전 장관 사무실 컴퓨터에서 발견된 ‘충성메모’로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메모엔 “제 개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영광인 중책을 맡겨주시고, 부족한 저를 파격 발탁해주신 대통령님의 태산 같은 성은에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목숨을 바칠 각오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메모가 언론에 배포되면서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안 전 장관은 임명 43시간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김영삼정부 첫 법무장관으로서 1993년 2월 제42대 법무장관으로 취임한 박희태 전 장관도 딸 편법입학 의혹으로 10일째 경질됐다. 딸이 이중국적을 유지한 채 한국에서 거주하다 외국인 자격으로 대학 특례입학을 하려고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9 5월 제48대 법무부장관으로 취임한 김태정 전 장관도 1999년 ‘옷로비 사건’과 함께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에 대한 지휘책임을 지고 14일째 경질됐다. 옷로비 사건은 외화 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최순형 당시 신동아그룹 회장 배우자가 남편 구명을 위해 고위층 관계자에 고가 의류를 제공한 사건이다.

1961년 5월 제12대 법무장관으로 취임한 이병하 전 장관은 그해 5·16 군사 쿠데타로 임기 15일째 장관직에서 내려왔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 5월 제32대 법무장관으로 취임한 정치근 전 장관은 그해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으로 33일째 자리에서 물러났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최장수 법무장관 황교안…여성 장관은 강금실 유일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법무장관은 누굴까.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3년 3월 제63대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다. 그는 829일, 약 2년3개월을 장관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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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63대 법무부 장관. 허정호 기자


황 대표는 30년가량 검찰에 근무하며 ‘공안통’ 검사로 명성을 쌓았다. 검사 시절 ‘KAL기 폭파범 김현희 사건’, ‘임수경 밀입북(密入北) 사건’ 등을 담당했고, 1998년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냈다.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 수사와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5년 6월 국무총리로 지명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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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55대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역대 법무장관 58명 중 여성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3년 2월 제55대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강금실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가 유일하다. 그는 노무현정부 초대 법무장관으로서 519일간 장관업무를 수행했다. 판사 출신인 강 전 장관은 당시 ‘검찰을 모른다’는 평가와 김각영 검찰총장의 11년 후배(사법시험)란 점에서 검찰의 반발 속에 취임했다. 그러나 검사장 인사에서 전례 없는 기수 및 서열 파괴 인사를 관철시켜 정면돌파했고, 김 총장 후임인 송광수 검찰총장과 함께 후속 인사를 무난히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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