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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학교서 못배운 논술·면접 어떻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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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 강북의 한 일반고 3학년생인 A양은 지난 여름방학부터 주말마다 수시 전형에 필요한 논·구술을 배우러 학원에 다니고 있다. 학교에서는 일부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초점을 맞춰 수시 대비를 해주다 보니 자연스레 A양과 주변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수시를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A양은 현재 회당 20만원씩 한 달에 80만~1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논·구술 준비에 쓰고 있다.

지방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대입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상경했던 B군 역시 이틀간 7시간 학원 수업을 받고 60만원을 지불했다. 수업은 1시간 강의, 나머지 6시간은 학생 2명을 강사 1명이 모의면접을 지도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B군은 "왜 학생들이 서울에서 교육을 받으려고 하는지 알겠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3 수험생 10명 중 8명이 수시 전형을 통해 대학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대비하고자 사교육에 의존하는 고3 수험생도 함께 늘고 있는 분위기다. 학교별로 혹은 지역별로 학생들의 대입 준비를 도와주는 커리큘럼 등의 교육 환경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회당 수십만 원에 육박하는 고액의 사교육 비용을 지불하고 논·구술이나 심층면접(블라인드면접)을 대비하고 있다는 게 교육계 현장에서 나오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얘기다.

16일 진학사가 고3 수험생 873명을 대상으로 수시 준비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9.0%(864명)가 올해 수시모집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수시 지원이 극히 드문 검정고시생 등을 제외한 일반고 및 특수목적고·자율형사립고(자사고) 학생 783명 중 49.6%(389명)가 가장 열심히 준비해 지원한 전형으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꼽았다. 그 뒤를 이어 학생부교과전형이 32.2%(252명)로 많았다. 현재 대학들은 학종 중심의 여러 가지 전형 내에서 학교생활기록부는 물론 논·구술, 면접 등을 통해 다각도로 학생을 평가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수시 전형이 학생의 재능과 잠재력을 종합평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를 준비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사교육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설문에서 60% 이상은 사교육을 통해 수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매달 30만~50만원 미만을 수시 대비 사교육 비용으로 쓰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18.0%에 달한다. 50만~100만원 미만(16.1%), 100만원 이상(7.5%)도 적지 않았다.

고3 학부모 C씨는 "생활기록부를 바탕으로 자기소개서를 짜 내는 것도 돈을 얼마나 들이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지고 있고, 특히 논·구술 준비에만 회당 적게는 20만원, 30만원씩 계속 나가다 보니 가계에 정말 부담이 된다"며 "이런 전형을 만들어놨으면 학교에서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다 보니 학원을 다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급기야 사교육 업체들 중에선 이 같은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악용해 학원 수강을 부추기는 모습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는 일선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도 한계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지방의 한 일반계 공립고에서 근무하는 교사 D씨는 "(학교에서) 특강 형식으로 논술 수업과 면접 대비 수업을 하지만 자기소개서·생활기록부 등에 기초한 학생 개인별 (수시) 지도가 이뤄지기는 어려운 환경"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 담임 E씨도 "방과후 교실 등을 통해 학교 차원에서 그나마 (수시 관련) 교육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선생님들이 부족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며 "이런 문제는 학종이 생기면서 더욱 심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일부 대학은 정규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문제를 수시 논·구술, 면접 평가 문항으로 내면서 고3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를 더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날 교육부는 교육과정 정상화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대전대·동국대(서울)·중원대·KAIST·한국산업기술대 등 5개 대학에 대한 시정명령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들 대학은 2019학년도 입시 대학별 고사에서 선행학습 금지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됐다. 그 이전엔 연세대(서울·원주), 울산대 등이 2년 연속으로 고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문제를 출제했다가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고민서 기자 / 문광민 기자 /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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