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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양권모 칼럼]‘안철수의 시간’은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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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안랩’의 주가도 출렁거렸다. ‘안철수의 예언’으로 이름붙여진 대선 유세 동영상이 새삼 화제를 모았다. 안철수 전 의원은 독일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신간을 내며 소식을 알렸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광장 대결이 절정이던 시점(10월4일)에 나온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낙연 총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이어 안철수가 깜짝 3위를 차지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안철수가 현실 정치를 주름잡는 대선주자들을 제친, ‘안랩’의 주가마저 출렁이게 할 정도로 뜻밖의 결과다. 제3세력의 상징성과 문재인 대통령 경쟁자였다는 이미지가 겹치면서 반사효과를 거둔 거겠지만, ‘정치 유배’ 중인 안철수가 이리 등장하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조국 법무장관의 사퇴로 어렵게 출구가 열렸지만, 두 달여 지속된 ‘조국 사태’가 여론 지형을 뒤집어 놓은 결과다.

경향신문

조국 사태는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다 싫다’는 무당층을 늘렸다. 서초동에서 이탈한 중도층도 광화문은 외면하고 무당파로 돌아섰다. ‘조국 싸움’에서 울타리 밖의 존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광화문은 물론 서초동 촛불에도 노동자와 농민, 청년, 사회적 약자들이 설 자리는 비좁았다. 기존 정치시스템이 불평등 격차와 사회 갈등 의제를 제대로 해결 못하고 되레 갈등을 증폭시키자, 가운데 사람들은 “그놈이 그놈들”이라며 기성 정당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 창간 여론조사(10월3일)에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24.8%에 달했다. 매주 정기조사를 실시하는 한국갤럽 조사에서 무당층은 꾸준히 25% 안팎이다. 특히 청년층의 ‘정치 이탈’이 확연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9~29세의 무당층은 절반에 육박한다. 특권의 성채 속에서 이뤄진 ‘그들만의 리그’를 목격한 청년들은 여야, 심지어 정의당에 대한 지지도 철회했다. 청년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과 정의당 지지율도 떨어지는, 기성 정당에 대한 ‘손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6년 촛불과 2017년 대선 참여의 소중한 기억이 훼손되면서, 청년들이 총체적 정치냉소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은 집권세력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2016년 총선부터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까지 청년들의 적극적 참여가 현 여권의 선거 승리의 미래성을 부여하는 힘이었다.

갤럽 조사에서 안철수는 무당층과 19~29세에서 이낙연 총리와 황교안 대표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새정치’의 브랜드가 남아 있지 않은 ‘국외자’ 안철수를 호명할 만큼 무당층과 청년들의 기존 정치시스템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깊다는 징표다.

조국 장관 사퇴를 계기로 질서 있는 수습 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분명한 건 조국 사태의 가장 큰 후과는 정치냉소 확대와 20대의 정치 이탈이다.

무당층 확대, 정치불신 강도, 청년의 이탈 등 2012년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킨 때와 유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안철수는 더 이상 새로운 정치의 열망을 담지하기 쉽지 않다. 지난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3위를 하면서 안철수의 효용가치는 밑천을 드러냈다. 촛불 국면에서의 모호한 행보, 바른정당과의 통합, 서울시장 선거 당시 김문수 한국당 후보와 단일화 추진 등 우왕좌왕하면서 중도노선의 명분마저 금가고 무엇보다 새정치의 남은 상징성마저 잃어버렸다.

안철수는 신간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에서 “주변의 기대와 응원에 신경을 쓰다가 나만의 속도를 잃어버리면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된다. 돌아보니 어떤 때는 무리한 적도 있다”고 했다. ‘오버 페이스’ 때문으로 변호하기에는 ‘새정치’ 실패의 내상이 너무 깊다. 사실 조국 정국 속에서 호명된 안철수는 실패하기 이전의 제3세력과 새정치를 표징하던 그 ‘안철수’다.

안철수는 유승민 의원이 절박하게 내민 손을 잡지 않고 미국행을 택했다. 안철수 스스로 정치 이유로 삼은 양당 기득권 타파와 극중주의 깃발을 들기에 명분도 세력도 준비도 미약하기 때문일 터이다. ‘오버 페이스’하면 끝장이라는 것을 이번에는 간파한 셈이다. 지나간 물을 되돌려 물레방아를 돌리려면 백배의 공력이 필요하다. ‘중도’에 대한 정치적 에너지가 더욱 커지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제3지대 공간이 제도적으로 확보되고, 그러고도 대안 인물이 부재할 때야 안철수의 마지막 등판 기회가 마련될 터이다. 물론 좌절을 맛본 강고한 기성 정당의 벽을 헤쳐나갈 내공과 시대정신을 갈파하는 새로운 비전을 장착해야 그 기회는 ‘안철수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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