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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논쟁] 서초동과 광화문 너머의 정치로 가야 / 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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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권일

사회비평가






[이슈논쟁/서초동 촛불, 두 시선]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취임 35일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조 장관은 이날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 법무부 장관직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조국 사퇴’와 ‘조국 수호’ 진영 간의 팽팽한 대립도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두달여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조국 사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논쟁거리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한겨레>는 최근 주말마다 대규모로 열린 ‘서초동 촛불집회’에 대한 엇갈린 두 시선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검찰개혁 촉구’라는 구호 아래 모인 서초동 촛불은 2016년 광화문을 뒤덮었던 촛불과는 또다른 양상으로 나타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여러 갈래로 표출됐기 때문이다. 아래에 2016 광화문 촛불집회에 이어 2019 서초동 촛불집회에도 참여한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이사와 이번 서초동 촛불집회에는 참여하지 않은 박권일 사회비평가의 견해를 나란히 싣는다.』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를 두고 “정치의 실종이 양분된 광장을 낳았다”며 ‘통합’의 정치를 주문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한편 이게 무슨 ‘양분’이냐며 자신이 속한 진영이 압도적 다수파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여론은 확실히 양분돼왔다. 하지만 핵심 기준은 ‘조국 수호’냐 ‘조국 사퇴’냐가 아니었다. ‘조국을 중심으로 도는 세상’과 ‘조국을 중심으로 돌지 않는 세상’ 이 두 가지가 더 중요한 변별점이다.

‘조국 수호’의 서초동과 ‘조국 사퇴’의 광화문은 격렬히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그 동전은 바로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이항대립의 정치, 상호 준거의 정치다. ‘상호 준거’라는 말은 각자 뭘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 잘못을 근거 삼아 지지를 얻는 행태를 뜻한다. 그러니까 의회 정치의 ‘실종’이 광장의 정치를 ‘낳은’ 게 아니다. 지금 광장의 모습은 자체로 이항대립 정치가 물화한 형태다. 의회 정치는 ‘실종’된 게 아니라 폐쇄적 양당 정치와 미약한 진보 정치의 모습으로 늘 같은 자리에 고여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자유한국당을 본진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보수 집회’야 그렇다 쳐도, “깨어 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서초동 집회를 민주당 지지와 등치시킨 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서초동 집회를 민주당 전당대회 같은 행사로 치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서초동 집회가 과거 어떤 촛불보다 참가자의 ‘순도’ 내지 ‘동질성’이 높다는 점은 지적돼야 한다.

우선 거의 모든 촛불집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던 소위 ‘운동권’이 잘 보이지 않았다. 특히 민주노총은 2016년 탄핵 집회 당시 동원 가능한 최대의 물적·인적 자원을 집회에 쏟아부었으나 2019년에 그런 조직적 움직임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9월28일 집회 직후 “운동권, 노조 깃발 안 보여서 너무 좋다”는 이야기가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면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어쨌든 서초동 집회가 역대 촛불 중 “외부 세력”과 “빨갱이”가 가장 적은, 그야말로 “순수 일반 시민의 촛불집회”에 가까웠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순수 일반 시민” 다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으로서 선거 때마다 범민주당 후보를 적극적·비판적으로 지지해온 집단이다.

또 주목할 점은 여론조사나 현장에서 보이는 청년세대의 냉소다. 이들은 입시 논란에서 드러난 조국 장관과 ‘586’ 세대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렇다고 자한당을 지지할 수 없기에 끝내 냉소를 택했다. 그리고 전통적 부동층, 상대적 정치 무관심층은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문재인 정권에 신뢰를 보냈으나, 조국 사태 등에 실망해 지지를 거두는 추세다.

2002년부터의 촛불을 계보학적으로 조망했을 때 가장 큰 공통점은 탈이념성과 비폭력성이다. 탈이념성은 메신저의 ‘순수성’을 강조해 메시지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인 동시에 내면화된 반공주의의 표현이다. 이는 2002년 촛불집회 당시의 ‘깃발 논쟁’부터 2019년 “노조 깃발 안 보여서 너무 좋다”는 발언까지 이어지는 매우 일관된 속성이다. 비폭력성 역시 운동권·노조의 과격함에 대한 반작용이자 정당성 확보 전략으로 지속되어왔다.

촛불집회 중 집권세력 옹호 성격을 띤 것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와 2019년 촛불이다. 반면 2008년·2016년 촛불은 집권세력에 대한 저항 성격이 강했다. 2002년 촛불집회는 집권세력에 대한 저항으로도 옹호로도 보기 어렵다. 또 하나 특이한 건 2008년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인데, 이 촛불은 이전과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서울 중심적이었다. 2002년, 2004년, 2016년 촛불 모두 전국 각 도시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데 반해, 2008년 촛불은 거의 광화문 한 곳에 국한됐다.

현재진행형임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2019년 서초동 촛불은 2004년과 2008년에 가깝다. 즉, 집권세력 옹호 집회이면서 서울에 주로 국한된 집회였다.(지방에서 열리지 않은 건 아니다.) 시민단체와 좌파들이 대거 합류했던 2004년이나 10대·20대 여성이 적극 참여한 2008년에 비해 2019년은 참가자 스펙트럼이 좁다는 점이 확연하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노조법 등을 개정해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를 옥죄려 하고, 조국의 법무부는 성소수자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존 정책을 답습했다. 진보적 시민의 염원이던 차별금지법도 실종 상태다. 검찰개혁안에 대한 숙의도 부족했다. 행정부 권력 강화로 이어지는 공수처 안보다 기소배심제 등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개혁안이 더 논의되어야 함에도 그저 ‘조국의 검찰개혁’으로 뭉개졌다. 2016년과 달리 저들은 명실상부 권력자이면서도 계속 피해자임을 강변했다. 이 모든 점이 바로 ‘조국 수호’라는 말 앞에서 멈칫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였다.

그렇기에 2019년 서초동 촛불은 거대하고 저항적인 스펙터클로 보이지만 실은 역대 촛불 중 보편성과 확장성이 가장 떨어지는 촛불일 수밖에 없었다. 조국 사태 이후 급전직하한 대통령 지지율은 몇달간 우리가 치러야 했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의 일부인 동시에, 진영 게임에만 몰입한 세력에 대한 시민의 준엄한 평가다. 정치는 이제 광화문과 서초동을 넘어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 접속해야 한다.

서초동 촛불은 저항적인 스펙터클로 보이지만 역대 촛불 중 보편성과 확장성이 가장 떨어지는 촛불이다. 급전직하한 대통령 지지율은 몇달간 우리가 치러야 했던 사회적 비용의 일부인 동시에, 진영 게임에 몰입한 세력에 대한 시민의 준엄한 평가다. 정치는 이제 광화문과 서초동을 넘어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 접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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