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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왜냐면] 은행을 돌아볼 때다 / 임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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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임세은
민생경제연구소 소장·경제평론가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투자금 손실 사태로, 투자한 고객들의 아우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수많은 질타가 이어졌다. 급기야 금융감독원장이 감독책임에 대한 사과와 함께 철저한 점검을 약속했다. 앞서 지난 2일 금융감독원은 잔액이 남아 있는 주요 해외금리연계 디엘에프는 3200여명의 투자자에게 7950억원가량 판매됐고, 남아 있는 잔액은 6700여억원이며 이 중 5780억원이 손실구간에 진입해, 예상 손실률은 52%라고 밝혔다. 즉 만기가 남아 있는 고객의 투자금 대부분이 원금의 50% 이상 까먹은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조사 및 실태점검을 진행하고 있고, 고객들도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등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금융상품은 미국, 독일, 영국 등의 해외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하며, 해당 기초자산이 특정 범위 내에 있으면 약속된 금리를 지급하고, 범위 밖으로 벗어나면 기초자산이 하락하는 비율 또는 정해진 손실배수만큼 원금이 손실되는 구조다. 이런 상품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업계에서는 매우 흔하게 발행해왔던 구조의 상품이다. 문제는 불완전 판매를 넘어서, 부적절한 판매와 관리에 있다.

손실이 난 상품의 대부분은 보수적 투자자들이 선호할 만한 ‘선진국의 금리, 짧은 만기(4~6개월), 보장 금리 쿠폰’을 장점으로 하는 상품이다. 그렇다 보니 판매하는 직원조차 내포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선취 판매 수수료와 실적의 유혹에 모른 척했을 것이다. 직원용 자료조차 상품이 가지는 우수한 장점만을 마케팅 포인트로 열거해 놓았고, 파생금융상품만이 지니는 특수한 위험성은 투자 유의사항 수준으로만 적혀 있었다. 상품의 특수한 위험을 알았더라도, 혹여나 몰랐더라도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고객 기망 행위이기에 도덕적 책임 또한 피할 수 없다.

은행은 매우 특수한 기능을 하고 있는 기관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적금, 대출 같은 여신 업무뿐만 아니라 통화량 조절 같은 중요하고 다양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단지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정부의 가장 중요한 경제 정책들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기에, 설립 인가뿐만 아니라 규제 또한 강할 수밖에 없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만 살펴보아도 은행의 지배구조나 이사 선임 등의 문제까지 정부에서 규제하고 있다. 그만큼 은행은 정부, 국민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기관이며 서민이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받는 기관이다.

그렇기에 은행은 이번처럼 문제가 된 초고위험 상품의 판매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은행과 거래하는 고객과 증권사 같은 금융투자회사와 거래하는 고객은 투자 위험에 대한 성향이 현격하게 차이난다. 오히려 금융투자회사 고객은 ‘원금보장’에 대한 기대보다 ‘투자수익’에 대한 기대가 큰 이들이 대다수다. 그렇기에 이런 파생금융상품 중 초고위험 상품은 원금손실 감내가 상대적으로 큰 금융투자회사에서 한정적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파생금융상품이 모두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은행은 이 중에서 사실상 원금보장 상품으로 취급되는 주가연계사채(ELB), 파생연계사채(DLB)나, 한 종류의 주가 지수만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지수연계 펀드(ELF) 같은 중위험 수준의 상품 정도만 선택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투자 위험도별 판매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금융산업의 발전은 안정적인 금융소비자가 존재해야 가능하다. 이번 사건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선량한 투자자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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