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치매 3000만원 보장한다더니
'10분의 1' 수준으로 아래로 낮아져
과열경쟁 사라지자 보장 낮춰
'묻지마' 가입 악용까지 겹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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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직장인 조모씨는 칠순이 넘은 부모님들의 치매보험을 가입하려고 보험 상담을 받다가 보장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치매 초기 단계인 경증치매 진단비가 60세까지는 500만원, 61세부터 300만원에 불과하다는 설계사의 설명을 듣고 보험 가입을 포기했다.
조씨는 "치매 간병에 2000만원 이상 들어간다고 하던데 300만원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한 것 아니냐"며 "직장 동료는 3000만원을 보장하는 치매보험에 가입했다고 하던데 몇개월 만에 이렇게 바뀔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보험업계 최고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치매보험이 최근 '비추'(추천하지 않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치매보험에 가입하겠다고 상담하면 치매보험 대신 뇌와 심장의 2대 진단비 보험이나 간병인을 지원받을 수 있는 보험을 대신 권하는 추세다.
'정도가 심한 건망증' 수준의 초기 치매에도 수천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치매보험은 날개 달린 듯 팔렸다. 지난해 손해보험사 치매보험 판매실적은 전년도보다 6.5배나 늘었다. 판매 경쟁으로 진단비가 3000만원까지 오르며 올들어서도 인기가 이어졌었다.
그러던 치매보험은 부지불식간에 몰락하고 있다. 2000만~3000만원하던 경증치매 보장한도가 10분의1 수준으로 낮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손보사들 사이에서 과열됐던 판매 경쟁이 사라지자 너도나도 상품 설계를 변경하면서 보장을 대폭 축소했다.
당시 보험사와 설계사들이 '80세 이상 노인 중 5명 중 1명은 치매', '치매 환자에 드는 비용이 연간 2000만원에 육박한다'며 걱정과 공포심을 자극한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모양새다.
보험사는 판매전략에 맞춰서 정기적으로 상품설계를 변경한다. 하지만 당시 보장한도가 지금보다 턱없이 높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치매보험에 대한 위험률 산출이 허술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까지 치매보험 판매 목적이 치매에 대한 경제적 부담 완화보다는 마케팅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치매보험에 중복 가입한 소비자도 87만명에 달했다. 보장이 좋다 보니 치매보험이 '묻지마' 가입 대상이 됐다. 단기성과 위주의 영업전략과 소홀한 인수심사라는 보험사의 고질적인 문제가 곪아터진 셈이다.
분쟁 예방에 초점을 맞췄던 금융당국도 치매보험의 몰락에 영향을 줬다. 금융감독원은 이달부터 자기공명촬영(MRI) 등 뇌영상검사에서 치매 소견 확인없이 종합적 평가로 경증치매 진단하도록 개정된 약관을 도입했으며, 이전 계약에도 소급적용키로 하면서 분쟁 가능성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반면 치매보험 판매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치매보험은 가입 후 보장받는 시점까지 최소 20년 이상 소요되는 상품인 만큼 보험사들의 단기적인 경쟁 과열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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