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의 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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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은 일지를 쓰지 않으면 그 전개 과정을 알 수 없다. 한마디로 난타전이자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기술’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비교적 분명하지만, 과정은 예측할 수 없고 유동적이다. 이것이 그의 협상 전략이다. 초기 효과는 매우 좋아 큰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곤한 방식임이 드러나고 있다. 대체 그가 무엇을 의도하는지 모르기에 환호를 보낸 사람도 뒷걸음질하고 있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가장 큰 위험으로 간주한다. 계획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조그만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도 대부분 미래 전망에 기초해 계획을 세운다. 시간과 자본은 모든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그것을 낭비하면 실패를 피할 수 없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모호성은 기업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 된다. 얼마나 많은 투자 계획이 트럼프의 변덕으로 물거품이 됐을까. 개별 기업으로 보면 별것 아닌 듯해도 경제 전체로 보면 천문학적 금액일 수 있다. 미국 기업의 이익 정체는 트럼프가 자초한 것일지 모른다.
기업 이익의 정체
실제 미국 기업의 이익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이 시행된 2009년 직후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2011년 이후는 정체 상태를 보인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이 시작됐지만 기업 이익에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 금융시장이 300% 이상 상승세를 탄 것과 대조적이다.
왜 미국 기업 이익은 실제 제로 상태인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무역전쟁 여파라고 할 수 있다. 이익 정체가 모든 기업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은 상황이 좋다. 글로벌화하지 않은 기업이다. 미국 내수시장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기업은 트럼프의 규제 완화와 재정 적자 혜택을 봤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은 고통을 겪고 있다. 내수 기업에서도 고객 소비가 늘어 이익이 늘어난 사례는 손꼽을 정도다.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게 결정적 이유다. 당연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 기업과 같이 복잡한 공급망을 가진 자본집약적 산업의 경영자라면 투입비에 따른 결과물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떤 장기 계획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개별 기업이 장기 계획을 유보하는 건 심각한 일이다. 투자 중단은 구매와 인력 충원을 줄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향상된 신제품이 생산되지 않음을 뜻한다. 개별 기업에는 합리적 결정이다. 그러나 산업계 전반으로 퍼지면 침체를 부르게 된다.
허점투성이 전략
“부셔야 얻을 수 있다.” 2002년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마침내 2003년 3월 미·영 군대는 이라크를 침공했다. 역사는 돌이킬 수 없지만, 부시는 그 조언을 심사숙고했어야 한다. 펜타곤 관리들은 이 침공이 미국 승리로 쉽게 끝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군과 동맹군은 같은 해 4월 바그다드를 장악했고 5월1일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전쟁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치솟았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종전 선언에도 이라크 저항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전쟁은 장기전이 되고 만다. 미군 사망자는 전쟁이 끝난 2011년까지 4천 명을 훌쩍 넘겼다.
트럼프가 촉발한 무역전쟁도 다를 바 없다. 이라크전쟁과 흡사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 관점에서 중국과 통상 문제는 분명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제삼자가 봐도 미국은 중국 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술 탈취, 불공정거래를 시정해야 한다. 선진국인 미국이 후발 주자 중국을 상대로 한 ‘사다리 걷어차기’에 해당하지만, 중국은 더 이상 다른 국가가 양보하거나 돌봐줘야 할 약자가 아니다. 이 때문에 미국 행보는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트럼프 전략은 협상의 달인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허점투성이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적개심을 기반으로 무분별한 ‘침공’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미국 기업과 농가, 소비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 중국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최악인 것은 상황을 점점 악화한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중국과 무역전쟁에서 쉽게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미국의 경제적 고통이 생각보다 크지만 중국의 고통은 그 이상이다. 양국 사이에 큰 차이는 있다. 미국은 ‘열린 사회’고 중국은 ‘닫힌 사회’다. 어떤 사회가 좋은지는 무역전쟁의 본질과 무관하다.
중요한 건,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국가의 힘이다. 중국은 그런 측면에서 미국보다 우세하다. 양국 정상 여론의 향배에 영향받는 정도는 극심하게 차이가 난다. 트럼프는 여론 추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트럼프로선 기업 고통, 경기 둔화, 시장 반응에 따라 대통령직 운명이 결정된다. 시진핑은 그렇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무역전쟁은 시간 싸움이고, 시간은 중국 편이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물러설 가능성은 없다. 소모전, 장기전 양상이 되면서 트럼프의 짜증은 깊어진다. 그럴수록 전쟁은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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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혼란
양국 무역전쟁은 안갯속이다. 언제 걷힐지, 언제 짙어질지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더 치명적이다. 만약 미국 의회가 법률에 따라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매긴다면 최악은 아닐 것이다. 기업이 예측해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가하는 위협은 자의적이고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상대방 국가 역시 그 대응책으로 언제든 정책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기업은 정교하게 작동하는 시계처럼 운영된다. 기업은 미래 수익을 기대하고 비용을 통제한다. 불확실성은 이런 시스템적 기업 운영을 방해한다.
미국 의회는 트럼프에게 영구적 효력을 갖는 협상 권한을 주지 않았다. 트럼프는 차기 대통령이 언제든 번복할 수 있는 집행 권한만 가졌을 뿐이다. 설령 트럼프 재임 중에 양국 무역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그것은 트럼프 임기 종료와 동시에 종료 또는 폐기될 수 있다. 트럼프 임기는 2021년 1월이면 끝난다. 이제 17개월 남짓 남았을 뿐이다. 물론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 시한은 4년 연장될 수 있다. 그래도 최대 5년 남짓이다.
기업 투자 프로젝트는 보통 수년에 걸쳐 진행된다. 어떤 기업도 장기적 재무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어떤 기업이 대대적 투자를 하려고 할까? 무엇보다 협상이 타결됐다 해도 언제든 깰 수 있는 게 트럼프 스타일이다. 기업이 대체 무얼 믿고 투자할 수 있단 말인가.
트럼프는 승자가 되고 싶어 한다. 전쟁은 그 방편의 하나다. 모든 사람은 안다. 트럼프가 이런 식의 전쟁을 중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언제든 더 많은 혼란을 가중할 수 있는 인물이란 것을.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트럼프 전략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얼마든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미 의회가 대통령에게 그런 권한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특정 조건이란 단서가 달렸지만, 트럼프는 애초 의회가 의도했던 것 이상의 권한을 사용하고 있다. 미 의회는 깜짝 놀라 부랴부랴 대통령의 무역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 의회가 그런 법안을 통과시킨다 해도 트럼프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을 뒤집으려면 상·하원에서 3분의 2 이상 표를 얻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법안이 통과될 확률은 매우 낮다. 적잖은 공화당 의원이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법원도 제동 어려워
법원이 트럼프를 멈춰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법원이 반드시 트럼프 반대편에 선다는 보장도 없다. 트럼프는 20~30% 관세에 만족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100%, 500% 관세 부과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가 원한다면 말이다. 트럼프는 그런 힘을 가졌다. 누구도 그를 되돌려세울 수 없다. 트럼프는 미국 기업에 중국을 포기하라고 한다.
공허한 위협이 아니다. 트럼프에겐 기업이 그의 뜻을 따르도록 하는 힘이 있다. 중국 제품 가격을 대폭 올려 미국 기업이 중국산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물론 미국 경제를 빠르게 침체로 몰아넣을 것이지만, 트럼프는 이를 두려워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무엇도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막을 수 없다.
누가 뭐래도 트럼프는 현재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존경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그는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자신이 가진 무기를 총동원해 강공을 펼칠 것이다. 상황을 더 악화할 뿐이지만 트럼프는 개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게 문제다. 이래저래 세계경제에 드리운 그림자는 쉽게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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