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걷고 싶은 길] 풍류와 낭만의 느림보강물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단양=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충북 단양에는 '느림보길'이라 부르는 도보 여행길이 있다.

연합뉴스

단양 느림보강물길의 잔도 [사진/조보희 기자]



휘휘 도는 남한강 줄기를 따라가는 '느림보강물길', 계곡과 숲을 통과하는 '느림보유람길', 소백산자락을 감아 도는 '소백산자락길'이 그것이다.

수려한 풍광을 감상하며 느릿느릿 걷기 좋은 길이어서 붙은 이름인 듯하다.

이 중 남한강 줄기가 어깨동무하는 느림보강물길을 걸었다. 그 길은 풍류와 낭만, 치유와 짜릿함이 있는 길이었다.

느림보강물길은 총 17.3㎞로 5개 구간으로 구성된다. 거리는 꽤 되지만 급격한 오르내림 없이 산허리, 강변도로를 따라 코스가 조성돼 약간의 지구력과 충분한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수려한 남한강이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멀리 소백산 줄기가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이는 개방감도 맛볼 수 있다.

느림보강물길은 삼봉길(2㎞), 석문길(3.8㎞), 금굴길(2.3㎞), 상상의 거리(6㎞), 수양개역사문화길(3.2㎞)로 구성돼 있다.

선사시대 유적지인 금굴에서 고수령으로 이어지는 등산길인 금굴길을 뺀 나머지는 모두 길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이 중 체력과 주변 풍광을 고려해 삼봉길∼상상의 거리∼수양개역사문화길 구간을 선택했다.

연합뉴스

이향정에서 바라본 도담삼봉 [사진/조보희 기자]



◇ 잔잔한 물줄기 평온한 삼봉길

도담삼봉주차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걷기 시작했다. 멎은 듯 고요한 강물 가운데 커다란 바위 3개가 솟아 있다.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도담삼봉이다.

조선의 기틀을 다진 삼봉 정도전에 관해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도담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온 것이라고 하는데, 당시 정선 사람들은 삼봉에 대한 세금을 요구했다.

어린 정도전은 "삼봉이 물길을 막아 오히려 이곳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 이후 정선 사람들은 더는 삼봉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한쪽에는 의자에 앉아 삼봉을 바라보는 정도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 뒤편에는 도담삼봉의 역사와 전설, 단양팔경, 백두대간, 자연동굴 등을 소개하는 '삼봉스토리관'이 있다.

정도전 동상 뒤편 계단을 오르면 삼봉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도담삼봉과 시내를 잇는 이 길은 도담삼봉 옛길로 지금은 사람과 자전거, 마차만 다닌다. 가끔 도담삼봉을 찾은 관광객을 실은 마차가 또각또각 지날 뿐이다.

다리를 건넌 후 터널을 지나면 왼편 언덕에 있는 이향정(離鄕亭)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 있다. 1980년대 충주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돼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을 위해 건립한 정자다.

이향정에 오르자 도담삼봉이 발아래 펼쳐진다. 퇴계 이황이 읊고, 단원 김홍도가 화폭에 담았던 바로 그 풍경이다.

퇴계는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지더라"고 노래했다.

연합뉴스

상상의 거리에 있는 장미터널 [사진/조보희 기자]



◇ 쉬어 가기 좋은 시내 구간

강줄기를 따라 도담삼봉 옛길을 산책하듯 거닐고 삼봉대교를 지나친 후 단양생태체육공원으로 접어들었다.

이곳부터는 '도시의 낭만을 걷는 길'이란 부제가 붙은 '상상의 거리'다. 강변 정취를 감상하고 도심 풍경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강 너머 금굴이 건너다보이는 단양생태체육공원 길에는 때마침 색색의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계란 프라이 모양의 개망초, 샛노란 달맞이꽃, 푸른 꽃 앙증맞은 닭의장풀, 붉은 꽃잎 화사한 둥근잎유홍초 등이 앞다퉈 매력을 뽐내고, 강아지풀은 바람에 흔들거리며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든다.

데크 길을 지나면 이제 시내 구간이다. 국내 최대 민물고기 수족관인 다누리아쿠아리움, 마늘순대·만두·통닭·흑마늘빵 등이 여행자를 유혹하는 구경시장 등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한적하게 걷기에 집중하고 싶다면 시내 도로보다는 강변을 따라 걷는 것이 좋다. 길에는 붉은 장미로 치장된 장미소공원과 장미터널이 있고, 일부 구간은 깎아지른 암벽이 이어지고 커다란 나무가 하늘을 가린 데크 길로 꾸며져 있다.

1.2㎞에 이르는 장미터널은 덩굴장미, 줄기장미, 사계절장미 등 장미 1만5천여 그루가 식재돼 있다. 상상의 거리는 총 길이가 꽤 되지만 곳곳에 쉼터와 벤치가 있어 쉬엄쉬엄 걷기 좋다.

연합뉴스

벼랑을 따라 설치된 잔도 [사진/조보희 기자]



◇ 아슬아슬 스릴 넘치는 잔도

마지막 구간은 수양개역사문화길이다. 이 길은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잔도(棧道)로 시작한다. 잔도에 들어서자 벼랑 허리쯤을 따라 허공에 매달린 데크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오른쪽엔 가파른 절벽, 왼쪽엔 푸른 물줄기를 끼고 허공을 걷는 기분이 꽤 그럴싸하다. 일부 구간에는 강물이 들여다보이게 바닥에 구멍을 뚫어놓기도 했다.

1.2㎞의 잔도를 지나면 최근 단양의 명물이 된 만천하스카이워크 입구가 나타난다. 만학천본에 조성된 달걀 모양 전망대로 남한강과 단양 시내, 소백산 등 수려한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집와이어와 알파인코스터도 즐길 수 있다.

수양개역사문화길은 강변을 따라 이어진다.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된 매곡터널을 지나거나 임도로 언덕을 넘은 후 도로와 나란한 숲길을 한참 걸으면 초록 이끼로 가득한 풍광이 펼쳐진다. 일명 '이끼터널'이다. 길 양쪽에 비스듬히 설치된 옹벽이 이끼로 가득 뒤덮여 붙은 이름이다.

옹벽에는 방문객이 새겨놓은 각종 문구가 한가득하다. 도로 한가운데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도 볼 수 있다.

이끼터널을 지나면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과 수양개빛터널이 나온다. 전시관에선 수양개와 금굴, 구낭굴 유적 등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석기 유물과 동물 화석을 관찰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수양개 터널을 복합멀티미디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수양개빛터널도 방문하기 좋다.

밤에 남한강 물길을 따라 조성한 야경팔경을 감상하며 걷는 것도 좋다. 도담삼봉, 고수대교, 양백폭포, 양방산전망대, 수변무대, 팔경거리, 관문조형물, 상진대교 등이 밤이 되면 화려한 빛으로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합뉴스

이끼터널 [사진/조보희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