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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前 영장판사 "조국 동생 풀어준 명재권 판사, 기준 공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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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상 경북대 로스쿨 교수

중앙일보

학교법인 웅동학원 관련 비리 의혹을 받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동생 조모씨가 지난 9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기하고 있던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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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54) 법무부 장관의 동생 조모(52)씨의 영장 기각을 공개 비판한 이충상(62·사법연수원 14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인들에게 두 번째 서신을 보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영장 실질 심사 기준을 공개하자”고 제안한 데에 대해 이 교수는 13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기준을 공개하면 오히려 구속만 안 될 정도로 범행하는 것을 조장할 수 있어 반대했지만 명재권 판사의 배짱 기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명재권(52·사법연수원 27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9일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조씨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 하루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이유로 심사를 미뤄 달라는 의견서를 법원에 내고, 심사 당일엔 심사 포기 의사를 밝힌 조씨의 영장이 기각된 것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이 지난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2017년 서울중앙지법에서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은 심사건 32건 중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어 논란이 일었다. 이 교수도 영장 기각 당일 “법원 스스로 오점 찍은 날”이라며 명 부장판사 결정을 공개 비판한 내용이 담긴 서신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이 교수는 지난 1988년 판사로 임용돼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2004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2006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다 최근에는 경북대에서 민사소송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 12일 지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서신을 통해서 2004년 당시 영장전담 부장판사로 활동할 당시 영장 기준을 일부 공개했다. 그는 “배임수재죄에서 수수액수가 제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5000만원 이상이면 실형이 예상돼 도망 염려가 있다고 봐 영장 발부를 원칙으로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수사개시 전에 돈을 반환한 경우에는 영장 발부 기준액을 1억원으로 높이고, 돈을 받고 부정한 업무처리를 한 것으로 보일 경우에는 발부 기준액을 2000만원으로 낮췄다”며 “업무의 공정성과 증거인멸 또는 증거인멸 교사에 따라 발부 기준액을 다소 가감했다”고 적었다.

이 교수는 조국 장관의 동생의 경우 영장 발부가 당연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교사 채용 대가로 추정되는) 2억원 일부라도 반환한 것이 아니고, 교사의 채용은 공정성이 아주 높이 요구되는 분야라서 배임수재죄 한 죄만으로도 도저히 구속을 면할 수 없다”며 “더구나 증거인멸교사를 한 것도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명재권 판사의 영장 기각은 어떤 경우이든 사법부의 역사적 오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조국 장관의 동생 조씨는 2006년과 2017년 두 차례 허위소송을 통해 웅동학원을 상대로 100억원대 채권을 확보한 혐의(배임)와 웅동중학교 교사 채용 대가로 2억원을 수수한 혐의(배임수재) 등을 받는다.

이 교수는 지난 9일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는 “조 장관의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 오늘은 법원 스스로 법원에 오점을 찍은 날”이라며 “교사 채용 관련 종범 2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이 발부됐는데도 주범인 조국 동생에 대해서는 영장 기각을 한 것은 큰 잘못이고, 어이가 없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 출신인 이 교수는 당시 “필자는 부인과 함께 전라도 사람인데도 대한민국의 통합과 법치주의의 확립을 위해 이 글을 썼다”고 적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 이충상 교수가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 전문

구속영장 발부기준의 공개

경북대 로스쿨 교수(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이충상

어제 바른미래당의 오신환 의원이 “영장재판의 신뢰도를 높일 개선방안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자유한국당의 주호영 의원이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기준을 공개하라”고 하였다. 두 의견을 합하면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기준을 공개하는 것이 영장재판의 신뢰도를 높일 개선방안이다.

필자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를 할 때 구속영장 발부기준을 공개하라는 말을 듣고 저항감을 느꼈다. 엄격한 과정을 거쳐 임명된 법관이 양심적으로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고 구속영장 발부기준을 공개하면 오히려 구속만 안 될 정도로 범행하는 것을 조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명재권 판사가 조국의 동생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것을 보고 구속영장 발부기준 공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기각과 관련하여 영장 발부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는데, 영장 발부기준이 모호한 것이 아니라, 법원 내부에 영장 발부기준이 여러 죄명별로 구체적으로 서면화되어 있는데도 외부에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명재권 판사가 그 기준을 위반하여 조국의 동생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영장전담판사를 할 때, 배임수재죄에서 수수액수가 제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5천만원 이상의 수수이면 실형이 예상되어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아 영장발부를 원칙으로 하고, 수사개시 전에 돈을 반환한 경우에는 발부기준액을 높이고(1억원) 돈을 받고 부정한 업무처리를 한 것으로 보일 경우에는 발부기준액을 낮추고(2천만원) 업무의 공정성이 어느 정도 요구되는 분야인지를 고려하여 발부기준액을 다소 가감하고, 도망했다가 잡혔거나 증거인멸 또는 증거인멸교사를 한 경우에는 발부기준액을 낮추는 내용으로 기준을 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기억이 조금 부정확할 수는 있다. 그 기준표를 필자가 복사하여 가지고 있을 수 있었지만, 조국의 동생에 대한 영장기각과 같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무모하게 가보는 법관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해서 복사하지 않았다). 조국의 동생은 2억 원의 일부라도 반환한 것이 아니고 그 돈을 준 사람들을 교사로 채용하는 부정한 업무처리를 하였고 교사의 채용은 공정성이 아주 높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에(실력이 나은데도 돈을 쓰지 못하여 채용되지 못한 사람들의 분노가 아주 클 것임) 조국의 동생은 배임수재죄 한 죄만으로도 도저히 구속을 면할 수 없다. 위와 같은 영장 발부기준이 공개되어 있었으면 명재권 판사조차도 기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조국의 동생이 증거인멸교사를 한 것도 명백하다. 따라서 조국의 동생이 배임죄는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위 배임수재죄와 증거인멸교사죄 두 죄만으로도 영장기각의 여지가 전혀 없다. 명재권 판사의 영장기각은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거나 명재권 판사가 알아서 긴 것 둘 중의 하나인데 그 중 어떤 경우이든 사법부의 역사적 오점이다.

명재권 판사의 영장기각이 크게 잘못된 것인데도, 거꾸로 영장기각에 비추어 검찰의 과잉수사가 입증된 것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은 본말전도이다.

구속 여부가 형사절차에서 제일 중요한 점, 우리나라에서는 영장 발부 여부에 대하여 누구도 항고할 수 없는 점, 우리나라는 구속 여부의 예측가능성에서 선진국에 크게 뒤지고 있는 점(2009년 고려대에서 개최된 양형기준 및 구속기준에 관한 국제심포지엄 참조)에 비추어 보아도 구속영장 발부기준 공개의 필요성이 아주 크다.

이용훈 대법원장 때 사법부가 양형기준을 자발적으로 제정하여 공개하기 시작하였고 양승태 대법원장 때 그 작업을 확대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양형기준의 제정과 공개 전에는 재벌 회장이 수백억 원 내지 수천억 원의 횡령, 배임을 하여도 부도난 재벌이 아닌 이상에는 거의 집행유예였는데 양형기준의 제정과 공개 후로는 크게 달라졌다. 양형기준의 제정과 공개에 대하여 처음에는 거부감을 갖는 법관이 적지 않았으나 이제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속영장 발부기준의 공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양형기준의 공개가 실형만 안 받을 정도로 범행하는 것을 조장하는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속영장 발부기준 공개의 부작용도 거의 없을 것이다. 공개되면 변호사들의 수입은 줄어들 텐데 이는 어쩔 수 없다. 필자가 변호사 폐업을 하였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위하여 쓰는 것이다.

개인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인치(人治)이고 법 내지 제도로 규율하는 것이 법치(法治)이며, 우리나라가 인치국가가 아니라 법치국가여야 한다. 법관의 재판보다 재량이 많은 것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인데, 십여 년 전에 대통령이 사면권을 크게 남용한 잘못이 사면심사위원회의 설치라는 제도개선의 큰 계기가 된 것(필자가 공무원 신분이면서도 실명으로 사면권 남용을 국제적 수치라고 비판하고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글을 최초로 썼더니 중앙일보가 사설로 지지하였고, 사면심사위원회가 만들어져 사면상신 안건을 상당히 부결하였으며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 자체가 거의 없어졌다)과 마찬가지로 명재권 판사의 크게 잘못된 영장기각이 구속영장 발부기준의 공개라는 제도개선의 큰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핑계를 대지 말고 신속히 구속영장 발부기준을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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