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다음 달부터 웃을 수 있어요= 이담하 시인에게 '말'은 행동을 유발하게 하는 기준이 되어 주기도 한다. '말'의 또 다른 표현인 '행위'는 그러므로 "그냥 놔둔다면" 누적된(맡겨 둔) "슬픔"이 되어 마침내는 울음을 쏟게 되는 것이다. 시인에게 "눈물은 나를 그냥 두라는 말"이며, 껍질을 "벗기지 말라는 말"은 "당신을 먼저 울게 할지도 모른다는" 다른 표현이며, "오래 참고 참았다"는 뜻으로 사용된 "겹겹이 된다"는 표현은 슬픔을 억제하는 의미의 '말'로 전이된다. 이처럼 이담하 시인은 '말'을 통해 행동을 결정짓고 이 '말'은 다시 자연스럽게 시의 언어가 된다. 이담하 시의 '말'의 성찬은 종국에는 "조용히 하라는 쉬"에 이르러 "몸의 가장 부끄러운 곳"과 대면하고 있다. "입을 닫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오해'와 '거짓말'의 시적 순간이 "눈과 귀를 떼어 놓"게 된다. "부끄러움"의 "입" 하나 겨우 할 말을 거르고 걸러서 비로소 시의 언어로 옮겨 적는다. "일어날 때보다 앉을 때 조용히 하라는" "쉬"의 언어로, 입의 할 말 없음에 시인은 조용히 귀 기울일 것이다. 이담하의 시는 '조용히 하라는 쉬'에서 다시 '말'이 깨어나고 있다."(이상 전해수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이담하 시인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2011년 '시사사', 2016년 '한라일보'를 통해 등단했다. '다음 달부터 웃을 수 있어요'는 이담하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다.(이담하 지음/파란)
◆얼굴들이 도착한다= 금란의 시에서 "얼굴"은 일반적으로 사람에 대한 제유(提喩)처럼 사용된다. '벽'에서의 "등"이 신체의 일부이면서 한 인간이 살아온 "세월"의 축도(縮圖)이듯이, 몇몇 시들에서 "얼굴"은 신체의 일부이면서 한 개인을 가리키는 기호로 쓰인다. 가령 "우울하거나 명랑한 얼굴들이 이제 도착한다"(초대장 1)라는 진술이 그렇다. 그런데 '여러 가지의 얼굴'에 등장하는 "얼굴"은 조금 다르다. 화자에게는 "수많은 이름"과 "여러 개의 얼굴"이 있다. 여기에서 "얼굴"은 색깔로 표현되는 내면의 감정과 유사하다. 화자는 자신을 가리켜 "생일이 없는 나이를 먹고"라고 쓰고 있다. "생일"이 없다는 것은 "여러 개의 얼굴"이 생물학적인 출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인 듯하다. 화자는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세계를 '숲이 태양을 가린 캄캄한 길'이라고 말한다. 화자의 시선의 방향에 따라 길에는 두 방향, 즉 '앞'과 '뒤'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이 "뒤를 돌아볼수록 견딜 수 없는 정글이 생겨나고/사방으로 흩어진 이름을 기억하며/참고 있던 얼굴이 쏟아진다"라고 고백한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과거를 회상한다는 의미이다. 그녀는 유년을 떠올릴 때면 "정글" 속에 갇혀 헤매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흩어진 이름"을 기억하게 되고, 그 이름들과 더불어 "참고 있던 얼굴"이 쏟아진다. 얼굴이 쏟아진다는 것, 또는 쏟아지는 얼굴은 "검붉은", "새파란", "샛노란" 같은 감정과 연결된다. 이는 유년 시절로 리비도를 집중할 때마다 시인의 내면에서는 상처가 덧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의 얼굴'에 등장하는 "오래전에 죽은 내 얼굴"이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시인은 개인의 '내적 감정'을 주머니에 담겨 있는 얼굴의 이미지로 간주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떤 얼굴은 주머니에 담기고, 또 어떤 얼굴은 주머니가 찢어져 "바닥으로 엎질러지고 마는" 경우도 발생한다. 감정에 대한 상상력이 이러하기에 어떤 감정, 즉 "웃자란 얼굴"은 주머니에 담기지 않는가 하면 바닥으로 쏟아지기도 한다. 주머니에 담기지 않거나 바닥으로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화자가 캄캄한 길 위에서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숨길 곳이 없는 얼굴들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다. 금란의 시에서 이 느낌을 떨쳐 내는 유일한 방법은 현대적 풍경에 대해 "맛있는 상상"을 펼치는 순간이다. "상상"은 시인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을 늦추고, 고통의 시간을 위로하며, 그리하여 일상적 풍경을 한층 흥미롭게 만든다. 이것들이 뒤섞일 때 금란의 시는 멜랑콜릭해진다."(이상 고봉준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금란 시인은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2013년 '시로 여는 세상'을 통해 등단했다. '편두통'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금란 지음/파란)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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