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한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가 강의를 위해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자신의 교수연구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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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언론에 기고해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11일 전태일 재단에 따르면 전날 월간조선 40주년 특집편 '박정희, 오해와 진실'에는 '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했다고? 농촌 유휴인력을 마이카 가진 중산층으로 키워'라는 제목의 류 교수의 글이 게재됐다.
류 교수는 "전태일은 1964년 봄 평화시장에서 일을 시작해 만 3년 만인 1967년 봄 재단사가 되었고, 같은 기간 그의 월급은 15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정확히 10배 올랐으며, 이로부터 다시 3년 후 1970년에는 재단사 월급 2만3000원을 받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전태일의 월급은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 동안 무려 15배 이상 상승한 셈"이라며 "이를 두고 과연 누가 착취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이에 전태일재단은 성명문을 발표하고 "수치만 나열하며 그 이면을 보지 않거나 애써 무시하는 전형적인 곡학아세"라며 "내용 자체도 무지와 왜곡투성이지만,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전태일과 노동자들을 박정희 정권을 왜곡·미화하는 데 활용했다는 면에서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단은 류 교수가 기고글에서 임금의 액수만 이야기하고 실질 구매력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단에 따르면 1960년대 당시 서울의 커피 1잔 값은 50원으로, 하루 종일 일해도 커피 1잔 값을 벌어 월급 1500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1만5000원 역시 하루 일당이 커피 10잔에 불과한 살인적인 저임금이라는 것이 재단 측의 설명이다.
또 "1960~70년대 당시 한국은 유례없는 장시간 노동 국가로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일요일도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 적어도 주당 평균 105시간을 일해야 했다"며 "류 교수는 당시 노동자들의 비인간적 노동조건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재단에 따르면 당시 미싱사들은 '객공'이라는 도급제 방식으로 일하며 미싱보조 등의 월급도 미싱사가 줘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단은 "류 교수는 노동자의 임금으로 다른 노동자의 월급을 줘야 했던 당시의 기막힌 노동구조도 전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류 교수처럼 편협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불순하게 전태일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역사에 또 다른 오점을 남기는 일"이라며 "그래도 언급하겠다면 당시 상황에 대한 검토와 연구를 한 후에 하는 것이 학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류 교수는 학자로서는 게으르고, 기고자로서는 비양심적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몰역사적"이라며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오점을 반성하고 당장 교수직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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