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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입시 개편을 넘어](1)삶의 격차 고려 없이 공정한 입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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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과정의 계층 격차

경향신문

상류층의 입시경쟁과 학벌 세습 과정을 그린 드라마 의 한 장면. 이 드라마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평을 받으며 높은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JTBC 제공


수시 원서 비용도 힘겨운 학생과

컨설팅·맞춤 교습 받는 학생 간에

부모 형편·능력이 다른 결과 낳아

‘공정한 대입 제도는 있나’ 물을 때


“수시 원서 쓸 때요. 6곳 쓰느라 30만원 들었어요.”

지난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수도권 지역 4년제 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간 ㄱ씨는 “대학입시 준비 기간 중 가장 많은 돈을 쓴 때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30만원이면 고등학생이 일반 보습학원에서 주 1~2회씩, 한 달간 한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돈이다. 수도권 변두리 지역에서 언니와 동생, 엄마가 함께 사는 ㄱ씨네는 월수입이 180만원인 차상위계층 가구다. 고교 학비는 면제였다.

그는 입시를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해결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학원을 다닌 적도 없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언니, 오빠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배웠다. ‘스펙’도 스스로 만들었다. 동아리는 교내 동아리 활동만 했고, 자원봉사는 다니던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자기소개서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썼다.

ㄱ씨는 그나마 학종 덕에 대학에 진학했다. 학생부교과전형은 내신 성적이 안되고, 논술전형은 학원에 가야 해서 할 수 없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골 동네에서 수능 정시로 대학 가는 건 ‘에바(오버)’ ”였다. ㄱ씨는 “예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역격차와 빈부격차가 커진 이 시대에 다시 수능만으로 대학에 간다면 지방 학생이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대학 갈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직 맞벌이 부부인 학부모 ㄴ씨는 올해 고1인 자녀의 학종 관리를 위해 학기마다 사설 컨설팅을 받고 있다. 매달 45만원, 한 학기 150만원 등 가격대가 여러 개였는데 ㄴ씨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학기에 한 번 받는 45만원짜리 컨설팅을 택했다.

이른바 ‘강남 8학군’ 내 일반고에 다니는 그의 자녀는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다. 아직 1학년이기 때문에 학종과 수능 정시를 모두 생각하고 있다. 내신이 걸려 있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승부처’다. 주요 과목인 국어·영어·수학·과학은 시험 보기 6~7주 전부터 과목별로 대치동에 있는 학원에서 집중 교습을 받는다. 자녀의 학교시험 준비에만 연간 700만원이 넘는 돈을 낸다.

자녀의 스펙 관리도 그의 몫이다. ㄴ씨는 “의대에 가고 싶어 하니까 병원이나 요양원 봉사 쪽을 주로 알아보고 신청해주고 있다”며 “보통 온라인으로 신청하는데, ‘빛의 속도’로 마감돼서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학종을 준비하긴 해도 학종을 신뢰하진 않는다. 그는 “수능 정시 비중을 60%까지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ㄴ씨 자녀와 ㄱ씨의 가정형편을 비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계층’에 따라 대입에 투입되는 ‘자원’의 양이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는 두 사례는 ‘공정한 입시제도는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 유명 입시전문가는 대입제도 개편 문제를 “기울어진 운동장에 집을 짓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들어도 부모의 형편과 능력에 따라 입시 결과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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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배경에 학벌 갈리는 현실, ‘교육 불평등’ 구조를 고쳐야

본인이 ‘상층’이라 생각하는 계층일수록 입시제도 이해 높아

대입개편 담론, 공정성보다 계층 간의 투쟁으로 왜곡될 우려

제도 바꿔도 ‘불신’ 계속…참여·감시로 근본적 변화 이끌어야


이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대입 개편 논의에서도 계층 격차를 고려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향후 개편될 대입제도가 ‘어떤 계층에게 더 유리한가’라는 사후 결과 때문만이 아니다. 대입제도 개편 논의 방향과 과정 자체도 계층 격차에 의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율 한국교원대학교 교수가 지난 8월 발표한 연구논문 ‘배제의 법칙으로서의 입시제도: 사회적 계층 수준에 따른 대학 입시제도 인식 분석’을 보면 본인이 ‘상층’에 속한다고 생각할수록 입시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수능 정시를 분명하게 선호한 반면, ‘하층’일수록 이해도가 낮고 분명한 선호가 없어 입시제도를 둘러싼 담론 형성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이를 근거로 “입시제도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입시제도를 보다 유리하게 변화시키려는 계층 간 전략적 투쟁의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입 개편을 둘러싼 담론이 ‘공정성’을 화두로 형성되기보다는, 대입을 앞둔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서로 유리한 방식을 관철하려는 방향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미가 있다.

■ 상층 학부모들 “학종 불공정”

실제 상층 학부모들은 학종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는다. 소수의 최상위 계층이나 다른 상층 계층의 부모보다 경제력에서 밀리면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학종 개편안으로 거론되는 비교과 영역의 일명 ‘자동봉진’(자율활동·동아리활동·봉사활동·진로 항목)을 폐지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여긴다.

고2 자녀가 서울에 있는 일반계고에 다니는 ㄷ씨는 “작년에 큰아이는 학종으로 보냈지만 작은 애는 수능 정시로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름대로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많이 신경썼는데 5군데 학종으로 원서를 냈다가 1곳 빼곤 다 떨어졌다”며 “1학년 때부터 사교육 도움을 받아서 비교과 스펙을 만들지 않은 걸 후회했다. 아이한테 미안해서 울었고, 아이 아빠도 자괴감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ㄷ씨는 “작은 아이는 큰애가 3년간 학종 준비하는 거 보면서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정시로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ㄷ씨는 “학종에서 비교과를 없애도 교사가 기록하는 학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행특)은 남게 될 것”이라며 “세특과 행특이 살아있는 한 비교과 스펙을 거기에 다 녹여서 써주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어차피 형식적으로만 바뀔 뿐 부모 능력이 좌우하는 건 변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 학종 보완 필요…정시도 답 아냐

그러나 굳이 정시를 선호하지 않는 학부모라 하더라도 학종에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신을 ‘중층’이라고 소개한 학부모 ㄹ씨는 “재작년 큰아이 입시 때 입학설명회를 다녀봤더니 입학사정관들이 하나같이 ‘특목고냐’ ‘몇 등급이냐’를 물어보더라”며 “학종 평가가 진로 적성이나 이에 대한 활동 내역보다는 출신 학교나 학교 성적에 좌우되는 것으로 느껴져 좌절했다”고 말했다.

수시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신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고1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특히 ‘1학기 중간고사’가 운명을 가르는 시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 학부모는 “경험칙상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고3 때 성적과 별 차이가 없다. 첫 성적이 나오면 ‘이 내신등급으로 어디 대학쯤을 갈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고 말했다.

내신 부담에 대한 대안으로는 교내 ‘수행평가’ 과정 등이 있긴 하지만, 수행평가 역시 학교별로 수준 차이가 크다. 학부모 ㄴ씨는 “과학고는 영어 수행평가가 과학 보고서를 쓰고 그걸 영어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특목고일수록 수준이 높아서 학종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한 사설 입시기관 관계자는 “출신 고교를 아무리 블라인드 처리한다 해도 사정관들은 학생이 낸 서류량이나 적혀 있는 활동 내역만 보면 금방 어느 학교인지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특목고가 ‘귀족 학교’로 인식되는 점을 감안하면 학종 제도 자체가 계층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교육부가 최근 “학종 비율이 높으면서 특목고 학생 선발이 많은 대학들을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렇지만 학종을 없애고 정시를 확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2016년 발표된 논문 ‘대학입학전형 선발 결정요인 분석’(고려대 이기혜·최윤진)에 따르면,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정시로 대학에 진학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분위를 총 네 구간으로 나눴을 때 월소득 501만원 이상인 4분위의 정시 진학 비율은 250만원 이하의 1분위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이는 정시 합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능성적이 사교육비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국 학종이든 정시든 어차피 부모의 경제력이 좌우하는 것은 다를 바 없지만, 상층 학부모들이 정시를 선호하는 것은 “(금수저들과 경쟁하는 데는) 학종보다 정시가 더 해볼 만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자신이 하층에 속한다고 여기는 학부모들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입시제도를 잘 몰라서 해줄 말이 없다”고 말했다.

■ 계층 격차 줄일 방법 논의를

다수의 전문가들은 대입제도를 땜질식으로 개편하기보다는 교육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적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좋은교사운동 진학연구회에서 활동하는 김진훈 교사는 “아이의 실력이 없는데 부모의 배경으로 학벌을 갖는 것이 문제”라며 “지금은 여론에 의해 국민 다수가 입시에 피해의식이 있는 상태라 즉흥적인 대응책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공정한 대입이란 단어를 쓰긴 하지만 각자 ‘공정’을 바라보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부터 해야 한다”며 “대입제도만 바꾸기보단 고교교육 체질 개선,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의 학생부교과전형 확대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홍직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 대입제도가 불평등의 재생산 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감시와 참여를 통해 이를 변화시키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진식·박채영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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