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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美 발빼자 터키군, 쿠르드족 공격…트럼프 "나쁜 생각" 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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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터키,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공격

민간인 8명 등 15명 사망, 수십명 부상

트럼프 "전쟁 끝내야" 철군 결정 옹호

공화당 "파렴치한 미국의 배신" 비판

터키 "ISIS 포로 관리, 국제사회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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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트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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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가 9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동 지역에 있는 쿠르드족을 향해 군사 공격을 시작했다. 터키 국방부는 이날 밤 트위터를 통해 "터키군과 시리아국가군(SNA)은 '평화의 샘' 작전의 하나로 유프라테스강 동쪽에서 지상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AP 통신은 익명의 안보 관계자를 인용해 "터키군이 네 갈래로 나뉘어 시리아 국경을 넘었다"고 전했다. 터키 언론은 터키군이 탈 아브야드와 라스 알아인 지역 등 네 곳을 거쳐 시리아로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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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군, 시리아 쿠르드 공격 본격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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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쿠르드와 터키군 간 교전이 벌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가 주축을 이룬 시리아민주군(SDF)의 무스타파 발리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 "터키군의 지상공격을 격퇴했다"고 주장했다. 터키군이 지상전을 시작하자 시리아 쿠르드는 IS 격퇴전을 중단하고 시리아 북부에서 총동원령을 내렸다.

터키 국방부에 따르면 터키군은 공습과 곡사포 공격으로 181개 목표물을 타격했다. 본격적인 지상군 진격에 앞서 공습과 포격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터키 국경에서 30㎞가량 떨어진 카미실리와 아인 이스사, 코바니 등도 터키군의 공격을 받았다.

터키 국방부는 그러나 "이번 작전은 유엔헌장 51조에서 규정한 '자위권'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對) 테러리즘 전투에 관한 결의안의 틀 안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시리아의 영토 보전을 존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간인과 무고한 사람, 역사적·문화적·종교적 건물, 작전 지역의 사회 기반 시설 등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터키군의 쿠르드 공격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작전은 나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오늘 아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터키가 시리아를 침략했다. 미국은 이 공격을 지지하지 않으며, 이 작전이 나쁜 생각임을 터키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터키에 대한 비판은 거기까지였다. 트럼프는 “나는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무의미하고 끝도 없는 전쟁에서 싸우는 걸 원치 않고, 특히 미국에 이득이 되지 않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미군의 시리아 철수와 그로 인해 터키가 쿠르드족을 공격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자신의 결정을 옹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터키는 민간인을 보호하고, 기독교인을 포함한 종교적 소수자를 보호하고, 인도주의적 위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우리는 그들이 약속을 지키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습 첫날 이미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이날 터키군 초기 공격으로 민간인 8명과 쿠르드군 7명 등 최소 1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부상자도 수십명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가 모든 약속을 지킬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현 상황을 계속해서 면밀히 감시하겠다”고만 말했다. 터키에 대한 제재나 민간인 사상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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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시리아 국경 마을 라스 알 아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날 터키는 시리아에 있는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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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터키의 군사 작전은 예상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성명에서 “터키가 오래전 계획한 작전 수행을 위해 조만간 시리아 북부로 들어갈 것이다. 미군은 이 작전을 지원하거나 이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이 지역에 더는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군이 철수하고 터키군이 시리아 북부로 진군한다는 발표였다. 노골적으로 터키의 군사 행동을 용인 또는 묵인하는 듯한 발언에 워싱턴이 술렁였다. 미국이 쿠르드 민병대에 대한 지원을 거둠으로써 터키가 공격해도 된다는 ‘그린라이트(신호)’를 줬다고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이 전했다.

쿠르드 민병대는 2015년부터 미국과 함께 이슬람 무장조직 ISIS를 격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미국이 동맹을 배신했다는 점, 터키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쿠르드족이 러시아나 시리아의 바사르 알아사드 정권과 손잡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 내 비판 여론이 일었다.

나라가 없는 쿠르드족은 시리아 북서쪽에 영국만한 크기의 땅을 차지하고 자치정부를 세웠다. 터키는 쿠르드족이 독립을 추진하면서 터키 인구의 19%를 차지하는 쿠르드계와 결합하면 터키의 국가 기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쿠르드에 대한 군사 작전을 시도해왔다. 미국은 쿠르드, 터키와 각각 동맹이지만, 쿠르드와 터키는 적대 관계에 있는 셈이다.

미 의회는 터키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으며 대통령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민주당의 크리스 밴홀렌 상원의원과 터키에 대한 초당적 제재안을 마련했다. 터키 대통령과 장관들의 미국 내 자산, 터키와의 군사적 거래, 군사적 지원과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제재 등을 담고 있다.

미국과 터키는 앞으로 여러 갈등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체포돼 쿠르드 통제하에 있는 ISIS 대원들을 수용소에서 잘 관리하고, 어떤 식으로든 ISIS가 재조직되는 일이 없도록 할 책임은 터키에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선임 고문인 굴나르 아이벳 박사는 CNN 방송에 출연해 “ISIS 포로 관리를 터키 혼자 떠맡을 수는 없다. 국제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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