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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파업 없는 바퀴 제국 '독일 텐테'···25년 근속 직원이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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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1위 히든 챔피언 독일 텐테

“모든 신제품은 사람이 만든다”

평생직장 문화…15년간 파업 1번

노사위기 때마다 사회적 대타협

‘살트셰바덴 협약’이 스웨덴 살려

중앙일보

1938년 12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 동쪽의 휴양지 살트셰바덴에서 어거스트 린드베리 스웨덴 전국생산직노조(LO) 위원장(왼쪽)과 지그프리트 에드스트룀 사용자대표(SAF)측 대표가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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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2월 20일 스톡홀름 동쪽 작은 휴양지 살트셰바덴. 이날 스웨덴 최대 부호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한 그랜드 호텔 2층에선 역사적인 협약이 이뤄진다. 훗날 스웨덴식 노사 대타협으로 불린 ‘살트셰바덴 협약(The Saltsjöbaden Agreement)’이다.

노사화합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살트셰바덴’의 유산은 오늘날 어떻게 남아 있을까. 지난달 1일 찾은 예테보리에서 그 전통을 엿볼 수 있다. 베어링 분야 ‘히든 챔피언’ SKF는 2017년 스마트 공장을 도입하면서 100명이 일하던 공장의 직원 80명을 로봇과 인공지능(AI)으로 대체했다.

북유럽의 대표적 사회민주주의 국가이자, 보편적 복지의 롤모델인 스웨덴에서 일자리를 잃은 80명은 어디로 갔을까. 테오 쉘베리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공장을 떠난 80명은 정부와 회사가 공동으로 재원을 마련해 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전원 회사 내 다른 일자리로 옮기거나 이직할 수 있게 도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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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가 스웨덴 살트셰바덴 그랜드 호텔에서 정상회담 전 환담하고 있다. 이 곳은 1938년 스웨덴 노사 대타협을 이룬 살트셰바덴 협약이 체결된 곳으로 유명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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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트셰바덴 협약 당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20년대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위기에 몰린 스웨덴은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었고, 대규모 농민시위(1931년)까지 겹쳐 사회 불안이 가속화했다. 당시 전체 인구(650만명)의 5분의 1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이주했다. 사회민주당 정권이 노동개혁 법안을 발의했지만 의회에서 부결됐다.

정부는 노사 양측을 압박해 노사정이 함께 하는 대타협기구를 출범시켰다. 수년간 협상 끝에 사용자대표(SAF)와 스웨덴 전국생산직노조(LO)는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경영권을 인정하고 ▶사용자는 고용유지와 기술투자를 약속하며 ▶기업이익금을 사회보장 재원으로 내놓는 등의 합의점을 찾았다.

전문가는 스웨덴의 대타협 전통을 현재의 결과물로만 이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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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교수는 "스웨덴의 대타협 전통은 위기를 극복하며 새롭게 쌓아온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김상선 기자


최연혁 스웨덴 린네 대학 정치학 교수는 “80년 된 대타협 정신을 이어왔다기보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새로운 대타협 정신을 만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1970년대 사회주의 성향이 강해져 기업이 스웨덴을 떠나기도 했지만, 90년대 이후 새로운 타협점을 찾는 등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며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대타협의 전통을 이어가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노사와 지역사회가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의 미래를 키워나가는 건 독일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1일 찾은 독일 쾰른시 베이멀스키르헨 텐테 공장 게시판엔 ‘40년 근속 근로자 축하 파티’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토비아스 라밍거 텐테 글로벌 담당은 “40년 이상 근속자가 전체의 5% 이상, 25년 이상 근속자가 30% 이상”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아우스빌둥(Ausbildung·일학습병행제)을 통해 인연을 맺은 노동자는 10대 후반부터 일생을 회사와 함께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진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이런 장기근속이 가능한 걸까. 독일 ‘히든 챔피언’ 기업은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밸(Work Life Balance)’을 이야기했다. 라밍거 담당은 “직원 대부분이 마을에 모여 살아 회사는 일터이자 생활 공간”이라며 “필수 근무시간을 포함해 주당 35~37.5시간가량을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다”고 했다.

기술집약적 부품기업인 텐테는 노동자의 숙련도를 중시한다. 텐테 측 관계자는 “모든 신제품은 사람이 만들고, 이후 기계 설비를 늘리거나 최종적으로 자동화를 구축한다”며 “부품기업일수록 숙련 노동자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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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퀴 전문 텐테의 기계 점검실. 소형 기계는 그날 마지막 공정을 마친 상태로 이 곳으로 옮겨져 점검을 받는다. 베이멀스키르헨(독일)=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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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이 3교대로 일하는 기계 점검·수리실은 독일 마이스터(Meister·장인) 정신의 압축판이다. 대형·자동화 설비를 제외한 소형 기계는 당일 마지막 생산을 마친 뒤 이곳으로 이동해 베테랑 숙련공의 검수를 거친다. 이는 텐테의 '1·10·100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제품 생산 중 문제가 1건 생기면 10배의 비용이 발생하고, 납품 후 컴플레인이 생기면 100배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원칙이다.

숙련공에 대한 예우는 노사 신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텐테는 세계 최대 산별노조인 독일금속노조(IG Metall) 소속이지만 지난 15년간 파업은 ‘한나절, 한 차례’뿐이었다. 노동자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하려 하지만, 파업과 대화 가운대 어떤 쪽이 장기적으로 득인지 냉철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라밍거 담당은 “노사 간은 물론 회사와 지역사회의 신뢰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텐테는 세계 최대 산별노조인 독일금속노조(IG Metall) 소속이지만 지난 15년간 파업은 ‘한나절, 한 차례’뿐이었다. 라밍거 담당은 “노사 간은 물론 회사와 지역사회의 신뢰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라밍거 담당은 “노사 간은 물론 회사와 지역사회의 신뢰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독일·스웨덴 등 유럽의 노사관계 모델을 따라 산별노조를 도입했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기업별 노조의 이기주의나,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한국과 달리 산별노조를 시작한 유럽은 노동자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측과 타협하고 쟁취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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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히든 챔피언' SKF는 노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갈등 없이 유연한 인력 배치를 진행한다. 테오 쉘베리 SKF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오랜 타협의 전통 속에 상호 신뢰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테보리(스웨덴)=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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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F 노조 관계자는 “산별노조는 우리의 대리인(agent)이며, 기업노조는 회사와 경영에 참여해 미래를 함께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측과 얼굴을 붉힐 수 있는 임금·단체협상은 프로스포츠 선수처럼 에이전트에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KF 경영이사회에는 최고경영자(CEO) 외에 12명의 이사가 있는데 4명이 노동 이사다. 이들은 함께 의사결정을 내리고 경영의 실패에도 책임진다.

최연혁 교수는 “유럽의 노조 조직률은 20세기 중반에 이미 70%를 넘어섰다.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 전체를 대변하고 권익을 보호한다”며 “노조와 사측, 정부와 지역사회가 신뢰를 바탕으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만든 비결”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최준호·이동현·김영주·박민제·문희철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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