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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만물상] '말모이' 문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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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기막힌 일을 들으시면 "어쨔 오려!" 하고 탄식을 하셨다. "옆집 아이가 교통사고로 다쳤답니다" 하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아이고매, 어쨔 오려" 하셨다. 나름 더듬어보면 '어째 옳여'가 떠오르고, 이어 그 뿌리에 '어찌해야 옳단 말이냐'가 있을 듯하다. 남도에서 흔히 듣는 '어째 쓰까'와 닿아 있다. 광주 송정역 시장에서 파는 문구에 '나으 가슴이 요로코롬 뛰어분디 어째 쓰까'란 글귀를 본 적 있다.

▶외국어로 번역이 어려운 우리말이 적잖다. 김소월 시 '진달래꽃'에서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의 '~드리오리다'는 번역가를 붓방아만 찧게 한다. 노래 '봄날은 간다'에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의 '~더라'는 번역 불가라고 한 소설가는 단언했다. 조지훈 시 '승무'에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의 '나빌레라'는 정말 어째 쓰까.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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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5일 창간 100년을 맞는 조선일보가 큰일을 벌인다. 할머니가 쓰시는 옛말, 시골 어른들의 사투리, 10대들의 새 말을 모아 앞으로 한 해 '아름다운 우리말 사전'을 엮는다.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말모이'란 이름으로 첫 국어사전 편찬을 시작한 지 108년 만에, 조선일보가 일제하 '문자 보급운동'을 선포한 지 91년 만에 발을 떼는 새로운 문화운동이다. 조선일보가 '말모이 100년' 운동을 알렸더니 이틀 새 새 어휘가 1300개 넘어 모였다 한다.

▶서울말 쓰던 직장 동료가 고향 벗과 전화할 땐 구수한 사투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듣고 있던 옆자리까지 정겨워진다. 일본 여성 작가 와카타케 지사코는 예순셋에 데뷔해 작년엔 '아쿠타가와상'까지 받았는데 소설 첫 줄부터 고향 도호쿠의 사투리를 쓴다. "표준어가 머리의 언어라면, 사투리는 몸통의 언어"라고 했다. '사투리란 나의 가장 오래된 지층'이라고 적고, "지금도 내 내면의 목소리는 어릴 적 쓰던 사투리"라고 했다.

▶'말모이 100년' 캠페인은 앞선 사전에는 못 보던 말, 번역이 잘 안 되는 말을 모으는 독립·애국의 정신운동이기도 하다. 주시경의 생각처럼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이며, 그 '말밭'을 기름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웃나라 작가가 부러워할 힘센 나라로 가는 지름길이다. '차갑고 시원하다'를 충청에선 '차곰차곰하다' 하고, '민들레'를 경북에선 '말방나물'이라 하고, '진짜니?' 묻는 말을 진주에선 '에나가?' 한다는 것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자 커다란 문화 자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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