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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매경 CEO특강] 정재숙 문화재청장 / 이화여대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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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신화장구지(新花長舊枝)'란 단어가 적힌 화폭이 강단 화면에 뜨자 정재숙 문화재청장(58)은 눈빛부터 겸손해졌다.

"한 스님께서 내려주신 글로, '새 꽃은 묵은 가지에서 나온다'라는 뜻의 금강경 야부송의 구절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옛 문화유산의 의미를 압축하는 글이지요. 현재는 늘 과거에 빚을 집니다."

다섯 글자가 우직한 필체로 적힌 휘호(揮毫)는 정 청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년 8월 무렵, 한 스님이 정 청장에게 선물한 화두이자 진언이었다.

대한민국 문화재 사무를 관장하는 역대 열 번째 대한민국 문화재청장이자 세 번째 여성 문화재청장인 그가 최근 이화여대에서 학생들과 만났다. '현장 중심주의'를 강조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정 청장은 걸려오는 전화에 즉답하지 못해 '이동 중입니다'란 자동 메시지로 답변을 자주 대신해 '이동중'이란 별명이 뒤따를 만큼 바쁜 몸이지만, 이날은 특별히 시간을 내 '매경CEO특강'에서 학생들과 긴 대화를 나눴다.

정 청장 관심사는 과거와 현대의 조화다. '신화장구지'란 단어가 강연 첫머리에 자리한 건 그래서다. 예술이야말로 조화라는 가치와 연계된다고 그는 믿는다.

"구본창 작가는 조선시대 달항아리를 촬영한 작품인 '달항아리 연작'으로 새 지평을 열었고, 조선 중기 문신이자 화가인 공재 윤두서(1668~1715) 자화상을 살핀 황재형 작가는 부인과 딸의 머리카락 수만 올을 모아 자화상과 인물화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앎에서 그치지 않고 새롭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 옛것이 가진 힘입니다."

최근 문화재청이 성공리에 마무리한 '돈의문(敦義門·서대문)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도 조화의 가치에 가닿는다. 문화재청은 1915년 일제가 강제로 철거한 돈의문을 104년 만에 디지털 기술로 복원했다. 앱을 다운로드한 후 정동사거리에서 켜면 돈의문 환영이 펼쳐진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로 빚은 문화재 복원의 혁신적 결과물인 셈인데, 심지어 시간에 따른 조도까지 차등 적용했다. "문화재는 원형 복원이 정답이지만, 예산 부족과 교통난 우려로 실물 복원은 불가능했습니다. 토지보상비를 제외하고 건축비만 220억원이 예상됐습니다. 디지털 복원 예산은 6억원 남짓이었죠. 문화재와 4차 산업혁명을 결합하자 또 다른 해답이 나왔습니다."

문화재가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은 구문이라고 정 청장은 강조했다. 새 기술을 동원하면 다른 스토리와 콘텐츠를 만들어내 미래 먹거리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해안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관련해 신안에 갯벌 실태를 조사하러 갔더니 65세 이상 초고령 인구가 전체 중 34%를 차지했습니다. 각박해진 상황에서 먹거리와 놀거리는 이제 문화유산뿐이라고 봅니다. 문화유산이 창출하는 미래 가치에 우리 후손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개청 20주년을 맞은 문화재청의 변화와 기대도 예고했다. "문화재청 개청 30년 이전에 국가유산부나 문화유산부로 승격되리라 확신합니다. 문화재는 대한민국의 정신이자 바로 국민 개개인에게도 '나 자신'이므로 현재의 청에서 부로 승격되길 바랍니다."

신문사 기자로 30년간 문화부에 근무한 정 청장은 지금은 작고한 아티스트 백남준과 오래전 만난 일을 회고하며 '예술의 미래'도 함께 점쳤다.

"백남준 선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21세기에도 예술은 살아남을까.' 백 선생이 그러시더라고요. '뇌에 담아서 갖고 다닐 수 있는 것만 살아남을 것이다.' 회화나 책은 실물이니 언젠가 도태되지 않을까요.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다르게 살고, 다르게 놀고, 다르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콘텐츠 경쟁력을 높여 전혀 다른 미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정 청장은 스티브 잡스의 두 명언도 언급했다. 하나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였고 다른 하나는 '늘 갈망하되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였다. "동시대 인연과 만나 남과 다르게 '노는' 것, 그러나 언제나 자신을 '배고픈(hungry)' 상황 속으로 몰아세우는 것…. 그런 자세가 우리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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