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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기자메모]‘컨틴전시 플랜’이면 강력하고 ‘비상계획’이면 평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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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지난 8월 초부터 기사에 자주 등장한 말이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여파로 국내 환율과 주가가 요동칠 때 기획재정부 등 당국자들은 “컨틴전시 플랜을 갖추고 있다” “필요시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하겠다”며 시장의 불안을 다독였다.

컨틴전시 플랜은 국가 간 전쟁이나 급격한 유가 변동, 자연재해 등 예측하기 어려운 사태에 대비하도록 미리 만들어 놓은 비상계획을 의미한다.

인용 보도의 특성상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이라고 불가피하게 적고 괄호 안에 뜻을 풀어 덧붙이면서 의문이 들었다. 왜 굳이 이 영어로 된 용어를 쓰는 걸까.

기재부 여러 관계자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관행이다.” 금융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인 데다, ‘비상계획’보다는 ‘컨틴전시 플랜’이라고 할 때 시장은 정부의 대응책이 좀 더 강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이다.

모든 외국어를 한자어로 혹은 순우리말로 번역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어·외래어도 한국어를 풍부하게 만드는 자산이다. 이미 널리 쓰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두고 다른 표현을 쓰면 이해하기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공유경제(Share Economy)는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자동차나 집을 빌려쓰는(대여) 형태로 사업이 이뤄지는데 ‘공유’로 번역되면서 오히려 뜻을 왜곡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경제정책 용어들은 다른 분야에 비해 유독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다. ‘규제샌드박스’나 ‘규제프리존’(제한적으로 규제를 허용하는 지역) 등 찬반이 갈리는 정책과 관련한 단어는 더욱 그렇다.

‘스마트’가 뭔지 충분히 논의되기도 전에 스마트팩토리와 스마트팜이 정책용어로 널리 쓰이면서 ‘스마트’는 오직 자동화라는 좁은 뜻에 갇혔다는 비판도 있다.

‘컨틴전시 플랜’을 뭐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정답은 없다. 하지만 경제기사는 가뜩이나 어려운데 용어 때문에 더 이해하기 힘들다는 비판은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언론사와 정부 우리말 사용에 있어서 노력이 필요한 지점이다.

박은하 | 경제부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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