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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북 미사일 맞고도 대북 협상에 목매는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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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0월2일 일본 EEZ에 북 미사일… 일 “납치 해결 위해 조건 없는 대화”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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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 오전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 일본 EEZ에 북한 미사일이 떨어진 것은 2017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들어가기 앞서 기자들과 만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북한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렇지만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조건을 붙이지 않고 북한과 마주하겠다는 입장에 변화는 없다”며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해도 아베 총리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조건 붙이지 않고 김 위원장 만나고파”



앞서 아베 총리도 9월24일(현지시각) 유엔 총회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조건 없는’ 회담 의지를 다시 밝혔다. 그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핵과 미사일 문제 등 모든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실현한다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5월부터 “조건을 붙이지 않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사람들이 연이어 방북했다. 가네마루 신 전 자민당 부총재의 아들 가네마루 신고를 대표로 하는 일본 방북단 60여 명이 9월 중순 북한을 찾았고, 일본의사회 대표단도 9월 하순 방북해 의료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이를 두고 일본이 본격적인 대북 접촉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국제공조를 통한 ‘최대한의 대북 압력’만을 주장하던 일본이 왜 ‘조건 없는 만남’으로 태도를 바꾼 것일까. 아베 총리의 유엔 총회 발언에서 주목할 것은 납치-핵-미사일이란 순서다. 북한 핵과 미사일 해결에 온 힘을 쏟는 한국, 미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납치 문제가 핵과 미사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다. 민심에 민감한 일본 정치인들은 공개 석상에서 반드시 납치-핵-미사일이란 순서로 발언한다.

아베 총리는 9월16일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들의 집회에 참석해 “나 자신이 조건을 달지 않고 김정은 북한 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납치 피해자의 가족은 물론 납치 피해자들도 나이가 들고 있어서 한순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매년 10월5일과 11월15일이 되면 납치 문제가 집중 부각된다. 요코타 메구미의 생일(1964년 10월5일)과 납치된 날(1977년 11월15일)이기 때문이다. 요코타 메구미는 납치 문제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중학교 1학년 때 저녁 운동을 하고 집에 가다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됐다.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북한 공작원들이 일본에서 평범한 일본인을 납치해 북한으로 데려갔다. 납치된 일본인들은 일본과 한국에 침투할 공작원에게 일본어 등을 가르쳤다. 일본 정부는 요코타 메구미 등 17명을 납치 피해자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북한이 인정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는 1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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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극우, 납치 문제 앞장선 아베 추앙



아베 총리는 ‘납치의 아베’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납치 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베 총리가 납치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것은 1988년 9월이다. 한 납치 피해자 부모가 “납북된 딸을 구출해달라”며 일본 자민당 본부를 찾아왔다. 당시 자민당 간사장인 아베 신타로 의원의 아들이자 비서였던 아베 신조가 이 부모를 만났다. 아베는 1993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에도 납치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동료 의원들은 ‘공부를 못해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아베가 복잡한 경제 문제, 사회보장 문제는 안 다루고 정체불명의 납치 문제를 다룬다’고 비아냥거렸다. 일본 정치인은 도쿄대·게이오대·와세다대 출신이 대부분인데, 아베는 세이케이대 출신이다.

수많은 국회의원 중 오직 아베만이 납북자 문제에 열성을 보였다.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이 성사되자, 아베 관방 부장관은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해 평양에 갔다.

납치 사실 자체를 부인했던 북한이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납치 문제를 통 크게 인정하고 일본의 통 큰 경제협력을 기대했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과하자, 고이즈미 총리는 ‘평양 선언’에 서명했다. 평양 선언의 뼈대는 북한과 일본이 식민지배 문제와 현안들을 해결하고 경제협력을 해나가며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북한이 납치 문제를 시인하자 일본에서는 평양 선언의 본류였던 북-일 수교, 경제협력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납치 문제만 부각됐다. 일본이 식민지배 가해자에서 납치 피해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악의 나라 북한’을 규탄하며 결집한 일본 우익 세력은 납치 문제에 앞장서온 아베를 ‘납치의 아베’로 떠받들었다. 이 바람을 타고 고이즈미 총리 퇴진 뒤 아베는 총리가 됐다.

북 “우리는 (조건 없는 대화) 흥미 없다”



최근 아베 총리가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거듭 거론한 배경에는 ‘나이가 들어 한순간이 시급한 납치 피해자’ 배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외교에서는 러시아와 일본의 남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영유권 문제, 북한과 일본의 납치 문제(북-일 수교)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일본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뒤로 미국, 중국, 한국, 러시아가 북한과 회담을 이어가자 홀로 남겨지게 됐다. ‘일본 패싱(배제)’이 현실화하자,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는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북한 반응은 싸늘하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9월26일 ‘떡 줄 생각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아베 패당이 우리에게 계속 추파를 던지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속심이 있다”며 “일본이 조선반도 정세의 극적인 변화로 주변 나라들과 국제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갈수록 외톨이 신세로 전락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후안무치한 섬나라 족속들과 무턱대고 마주 앉는 데는 전혀 흥미가 없다”고 했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뒤 납치 피해자 5명이 일본으로 귀국한 뒤 17년 동안 한 명도 귀국하지 못했다. 이 상황이 일본 정부로서 “통한의 극치”이지만, 북한은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당분간 북한은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 등 북-미 협상에 집중하느라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에는 흥미를 갖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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