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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목)

[와칭] <조커>속에 심어진 <모던타임즈>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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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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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엔 다양한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인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조커가 되는 아서 플렉스의 내면적 캐릭터를 만드는데 굉장히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무성영화의 명작 중 하나인 <웃는 남자> 역시 조커의 외면적 캐릭터를 만드는데 영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캐릭터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과 주제에 영향을 준 작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36년에 제작된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영화 <모던타임즈>가 바로 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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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의 외면적 캐릭터에 영감을 준 <웃는남자>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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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화점과 TV쇼조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성난 군중들이 밖에 있는데 극장에선 안전하게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상영되는 장면입니다.

눈을 가린 찰리가 백화점 2층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데 그걸 보는 부자들은 껄껄거리며 웃고 있습니다. 광대인 찰리와 그걸 지켜보는 상류층 사람들은 같은 양복을 입고 있어 비슷하게 보이지만 이 둘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이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돈없고 힘없는 가난한 민중(찰리)은 눈을 가린채 진실을 보지 못하고 광대처럼 아슬아슬 스케이트를 타고 있고, 그들의 위에 서있는 지배계층(고담 고위층)은 그걸보며 우습게 생각한다는 걸 은유하는 듯 보여서 좋았습니다.

<모던 타임즈>의 이후 내용에서 찰리 채플린은 백화점을 털러온 강도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 강도들의 정체는 자신의 전 직장이었던 공장 동료들입니다. 대공황이 시작된 후 실직한 노동자들이 백화점을 털러온 겁니다. 그 동료는 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도둑이 아니야. 그저 너무 배가 고팠을 뿐”

<모던 타임즈>와 마찬가지로 <조커>의 화난 대중들도 그 행동이 촉발된 계기에는 죽을 것 같은 삶의 고난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서 플렉(조커)은 더더욱 이 계층을 벽을 깨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앓고 있는 정신병과 신체적 핸디캡, 게다가 불우한 집안환경까지 유복한 가정에 태어난 능력자들과는 출발선부터 다른 것입니다.

메타포를 따지자면 당시 백화점은 피지배계층이 누릴 수 없는 지배계층들의 특권지역이었습다. 백화점엔 세상만물, 온갖 아름답고 비싼 것들이 즐비했지만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돈있고 힘있는 자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백화점은 그 자체로 가난한 민중들에게 이루기 힘든 환상을 제공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너도 노력해서 성공하면 이것들을 누릴 수 있다. 그래 나도 노력하면 저기에서 멋진 물건을 살 수 있어”하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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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시기 힘겨운 대중의 삶을 그린 찰리채플린의 영화 <시티라이트>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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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환상입니다. 무엇을 소유하고자하는 욕망을 노력하면 가질 수 ‘있다’와 ‘없다’로 나눈 후 “너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면 대중은 그 욕망으로 인해 지배계층의 통제를 알게모르게 수긍하게 됩니다.

물질적 부를 획득한다고 사회적 계급이 상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를 상류와 하류로 나눌때 가장 큰 구분점이 되는건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역사적 코드를 얼마만큼 이해하는냐 하는 것입니다. 과거 상류계급이 화려한 오페라와 발레를 즐기고 어렵게 쓰여진 문학작품과 이해하기 힘든 추상화를 고급스런 살롱에 모여 논의했던 것은 그 코드를 얼마나 많이 알고 깊이 이해하는가에 대한 지적 허영이었습니다.

지식그룹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적인 권력이 있거나 문화적인 소양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런 혜택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가난한 민중에겐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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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관종이었던 조커. 아서 플렉(조커)의 꿈은 TV쇼 출연이었다.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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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만 그랬을까요? 현재는 점점 그 벽이 더 두터워지는 중 입니다. 현재는 지배계층이 가졌던 품격마져 사라진 상태입니다. 어떻게든 관심받고 성공하면 이 자본적 허영, 지적 허영, 삶의 허영은 같이 따라옵니다. <조커>에서 아서 플렉스의 꿈은 ‘TV쇼’에 나오는 것이 었습니다. <모던 타임즈>에서 판자집에 사는 찰리가 ‘백화점’을 꿈꾼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자본주의의 계급구조와 허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트맨>을 모티브로한 <조커>는 <모던타임즈>를 보고 나면 더 많은 부분이 이해됩니다. 조커가 보기에 세상은 ‘백화점’ 같았을 겁니다. 부조리로 똘똘뭉친 이상한 곳.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기득권층이 되지 못한 사회적 약자로서 이 세상은 부의 평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각박한 곳입니다.

2.깃발과 권총<모던타임즈>에는 <조커>와 연동되는 상징적인 장면이 많은 편입니다. 그 중 하나는 길을 걸어가던 찰리가 우연히 트럭에서 떨어진 붉은 깃발을 줍게 되고 트럭을 향해 깃발이 떨어졌다고 힘차게 휘두르는데 뒤쪽에 우연히 지나가던 시위 군중이 합류하게 되면서 집회의 선동자로 몰리는 장면입니다.

영화의 아서 플렉(조커)도 우연히 갖게 된 권총으로 우연히 자신을 공격하는 은행원 셋을 죽이게 되는데 뉴스에서 그걸본 토마스 웨인은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을 조롱하는 식의 뉘앙스로 인터뷰를 합니다. 그 모습을 본 군중들은 조커의 행동을 옹호하고 대규모 폭력집회를 벌이게 됩니다. <모던 타임즈>와 마찬가지로 아서 플렉 역시 자신이 바라지 않았지만 군중들을 선동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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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는 우연히 권총으로 살인을 시작한다.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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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플렉스가 조커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권총입니다. 원작인 <배트맨> 역시 조커의 총성으로 시작됩니다. 단지 원작은 계획적 범죄의 희생양으로 배트맨이라는 히어로를 탄생시키지만 <조커>는 우발적 범죄에 의한 우연의 산물로 조커라는 빌런을 탄생시킵니다. 배트맨과 조커가 서로 대척점에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중요한 소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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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톱니바퀴에 비유한 <모던타임즈>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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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즈>에서 그 유명한 톱니바퀴신을 보자면 기계를 지배하는 인간이 아닌 인간이 과학에 의해 지배되고 그 안에 인간을 끼워 맞추려 하는 것이 보여집니다. 기계화된 시스템의 통제를 부수고 도시와 인간과 문화를 부수려한 조커와 기계에게 도움받아 도시와 인간과 문화를 지키려하는 배트맨의 관계는 이처럼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가진자는 기계를 통제하지만 못가진자는 기계에 통제 받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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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는 희극을 꿈꿨지만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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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던 타임즈>는 대공황시대 당시의 사회상을 희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모습은 꽤나 비극적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의 대척점에 영화 <조커>가 존재합니다. 희극처럼 살아가려 했지만 비극이 되어버린 미치광이의 탄생을 비추고 있으니 말입니다. 두 영화 모두 사회는 공업화, 인간은 규격화 되어가는 각박한 사회속에서 진정한 웃음과 행복을 찾으려 노력한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글 by 김광혁 객원에디터


제목 조커(Joker, 2019) 감독 토드 필립스 출연 호아킨 피닉스, 로버트 드 니로, 재지 비츠등급 15세 관람가 평점 IMDb 9.3 로튼토마토 69% 에디터 꿀잼




와칭(wa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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