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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이기 송이라꼬?" 삿갓 핀 송이 받은 친구가 깜짝 놀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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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09)



일년의 딱 한 달, 이맘때 쯤이 한창 송이버섯이 나는 철이다. 비싸기도 오지게 비싸다. 상류층에선 맛과 돈의 품격을 높인다며 기다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양식이 안 되는 송이는 원래도 비싼데 올해는 수확까지 별로란다. 10개 정도 가격이 내 한 달 생활비보다 비싸다. [중앙포토]





송이 1kg가 내 한달 생활비



날씨에 민감하고 제멋대로 나오는, 양식이 절대 안 되는 송이가 올해는 수확까지 별로란다. 그러니 1㎏(10개 정도) 가격이 내 한 달 생활비보다 비쌀 때가 더 많다. 며칠 전 가족모임에 남동생이 그 비싼 송이를 1㎏을 사와서 맛을 보았다.

송이를 먹다가 예전에 작은 송이 산을 갖게 돼 생긴 웃픈(웃기고 슬픈) 일이 생각나 추억해본다. 지방 법조계에 활동하며 상류층 엘리트로 사는 부자 동창이 있다. 지금은 잘 살면서도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않고, 어려운 친구나 지인을 보면 두 팔 걷어 앞장서서 도우며 산다.

내가 산속에 들어갔을 때도 온갖 농산물을 다 팔아주고 기운 내 살아갈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줬다. 송이가 나던 가을 어느 날, 그해도 상품 가격은 엄청 올랐다. 친구가 가격을 물었다. 선물용은 얼마고, 하품 가격이 얼마라고 하니 가족끼리 맛보게 대충 한 박스 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 먹을 거니까 피어 우산같이 생긴 버섯과 중품을 섞어 고마움도 함께 꾹꾹 담아 보냈다. 택배를 보낸 다음 날 목소리가 격양된 친구가 전화로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야, 비싸도 송이버섯 보내라 캤는데 니 뭔 버섯 보낸 기고?”

“송이버섯 보낸 거 맞는데 왜? 집에서 먹을 거라 허드러진거 많이 넣어 보냈구만. 먹는 데는 지장 없다.”

“이기 송이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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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송이로 시골밥상을 차렸다. 햐안 쌀 위에 송이를 소복이 얹었다. 썰기만 해도 솔향이 그득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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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어느 날 일본인 손님을 모시고 온다고 이런저런 주문을 했다. 선물용 한 박스와 함께 송이버섯 한 박스를 별도로 사서 송이밥으로 시골밥상을 차리란다. 특별한 손님이라 뻔한 도시의 뻔한 관광보다 한국 시골의 하루를 보여 주려고 계획을 짰단다. 마침 송이 산도 생겨 바쁜 누나네 송이도 팔아 줄 겸 겸사겸사였다. 이것저것 밭에서 딴 온갖 야채와 열매로 시골스런 반찬과 송이 전골도 만들고, 잔잔하게 썰어 압력밥솥 안의 하얀 쌀 위에 소복이 얹었다. 썰기만 해도 솔향이 그득했다.

일본어를 전공한 딸아이도 통역으로 내려오라 하고, 마당도 깨끗이 쓸고, 모든 준비를 마칠 즈음 동생이 손님을 모시고 도착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밥상을 차리고 밥을 푸려는 찰나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일본 손님한테 내놓은 설익은 송이밥



아뿔싸! 너무 허둥대는 바람에 밥솥에 취사를 눌러놔야 하는데 보온으로 그냥 둔 것이다. 타거나 질거나 하면 먹을 수나 있지만 이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보온으로 된 밥은 어떤 상태인지 밥을 지어 본 사람은 다 안다. 눈물이 울컥하고 나왔다. 그때의 상황이란 정말 난감했다.

내 표정을 읽은 딸아이가 이런저런 통역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매사가 긍정적인 동생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괜찮으니 그냥 퍼달라고 했다. 그 일본인 손님이 엄지를 올리며 따라 말했다. “저도 괜찮습니다. 향은 아주 좋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배려에 뻥튀기로 밥을 지은 것 같은 이상한 밥을 한 공기씩 먹으며 송이버섯을 주제로 많이 웃고 담소했다. 그날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배려가 얼마나 감동인지 참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다. 손님이 떠나고 우리는 수십만 원짜리 송이가 든 밥이 너무 아까워 다시 삶아 꾸역꾸역 보약 먹듯이 하루를 더 먹었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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