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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2km 인공수로·공원·크루즈·오페라하우스…돌아와요 부산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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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한겨레 공동기획]

‘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1부 국내- ①‘무역항 1호’ 부산 북항

개항 140여년 만에 항만 재생 추진

노무현 대통령 지시로 2006년 착수

문재인 대통령 임기내 1단계 완공

2022년 완공 오페라하우스 공사 분주

관광객 끌어들일 ‘콘텐츠’ 과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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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은 시민들이 슬리퍼를 신고 와서 배 타고 즐길 수 있는 가장 즐거운 곳이 돼야 합니다.”

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 중구 중앙동 한진해운빌딩 28층 라운지에서 부산항만공사 사장의 부산 북항 재개발 마스터플랜 브리핑을 듣고 이같이 말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강서구 부산항 신항에서 열린 부산항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부산 북항 재개발 1단계 사업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다”며 “임기 중인 2022년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10일 오후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테라스에서 바라본 부산 북항은 한산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북적였던 1~4부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일본 등지로 오가는 배들이 정박하는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부두에 닻을 내린 크루즈 선박이 다가왔다. 일본 나리타에서 승객 500여명을 태우고 출발한 길이 181m, 수면 기준 높이 40m의 3만277t급 선박이다. 부산 북항이 재개발되면 크루즈 승객들이 공연도 보고 맛집도 들르면서 장기간 체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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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가 정박한 부두 앞에선 포클레인 등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부두 옆의 수변공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부산역에선 철구조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부산역과 수변공원을 연결하는 데크다. 길이 170여m, 너비 26~60m인 데크가 완공되면 부산역을 빠져나온 관광객들이 데크와 연결된 지상 17층, 지하 4층의 환승센터 통로를 거쳐 수변공원까지 바로 갈 수 있다. 항만재생 공사의 일환이었다.

바닷가 쪽으로 더 들어가자 인공 해수로가 나타났다. 일부 수로를 따라 바닷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너비 30m, 길이 2㎞의 곡선형 수로가 완공되면 물의 도시 베네치아처럼 곤돌라(카누)나 오리배를 타고 북항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공사가 가장 활발한 곳은 오페라하우스 예정지다. 대형 크레인과 레미콘이 바삐 움직였다. 시공사인 한진중공업 현장감독은 “본건물은 설계 중이어서 주차장을 먼저 만들고 있다. 현재 전체 공정률은 5%”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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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하우스는 부산 북항 1단계 시행자인 부산항만공사가 40년 동안 부산시에 무상 사용을 허가하고 부산시가 롯데그룹 출연금 1000억원을 보태 2500억원을 들여 2022년 완공할 계획이다. 지역여론이 갈려 오거돈 부산시장이 공사를 중단시켰으나 부산항만공사의 800억원 출연을 성사시키며 다시 추진하고 있다. 200여척의 요트 정박을 위해 만든 마리나 부두에선 낚시꾼들이 부산항대교를 바라보며 세월을 낚고 있었다.

부산 북항은 1876년 개항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무역항이다. 1906년 부두 축조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과 강제노역 희생자들이 이곳에서 배를 타고 울면서 떠났고 해방 뒤 동포들이 귀국선을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한국전쟁 당시 국제구호물자도 이곳을 거쳐야 했다.

이후 부산 북항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도심과 가까워 확장이 불가능했던 탓에 닻을 내릴 수 없는 배들은 다른 항만으로 발길을 돌렸다. 2006년 부산항 신항이 개장하면서 부산 북항은 애물단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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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재개발 지시를 내리면서 부산 북항은 부산 경제 부활의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2008년 10대 뉴딜 프로젝트에 부산 북항 재개발사업이 포함되면서 착공과 함께 본궤도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뒤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부산 북항 재개발은 2단계로 나누어 추진된다. 1단계는 ‘유라시아 관문과 국제해양관광 거점’이 목표다. 사업시행자인 부산항만공사가 1조6577억원, 정부가 3811억원 등 2조388억원을 들여 매립한 땅을 포함한 육지부 119만㎡와 해면부(바다) 34만㎡ 등 153만㎡에 공원·도로·공공시설을 2020년까지 짓는다. 현재 공정률은 53%라고 한다. 육상이 완공되면 민간사업자들이 6조원 이상을 들여서 상업·업무시설 등을 짓는다.

1단계에서 주목할 점은 상업·업무시설의 비율이 30%라는 것이다. 나머지 70%는 공원·도로 등 공공용지다. 민관 협치의 결과다. 지역전문가 등 50여명은 상업 건물이 부산 북항을 병풍처럼 뒤덮는 것을 막고자 2012년 라운드테이블을 만들었다. 집단지성의 토론 결과를 해양수산부에 전달하고 3년 동안 끈질기게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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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양수산부는 2015년 설계를 변경했다. 아파트 층수를 낮추고 주거·상업시설의 위치를 구석으로 몰았다. 공원 면적을 넓혔고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1부두와 안벽까지 개발하려던 애초 계획도 철회했다. 옛 국제여객터미널 터에 부산항 역사관을 건립하기로 하는 한편, 남항~부산대교~북항~자성대부두~동천 7.3㎞의 보행길도 조성한다.

북항 2단계는 과거·현대·미래가 공존하는 ‘글로벌 신 해양산업 중심지 육성’이 목표다.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자성대부두, 부산역, 부산진역, 좌천·범일동 일대 219만㎡를 금융·비즈니스·연구개발 중심의 혁신 성장거점으로 만든다. 다음 세대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배려다. 다만 막개발을 막기 위해 주거용지 비율을 11%로 제한하고 공원·도로 등 공공시설용 터가 45% 이상 유지되도록 했다. 정부가 도로 등 기반시설을 완공하고 민간사업자가 선정되면 2조원 이상을 들여 업무·상업시설 등을 짓는다.

정부와 자치단체, 시민사회는 이해관계가 달라서 발생하는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부산시, 코레일 등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부산항 북항 통합개발 추진단이 지난 3월 발족했고 실무협의회도 구성됐다. 15개 분야 부산의 각계 대표와 해양수산부·정당 관계자 등 34명으로 꾸려진 추진협의회는 정책 수립과 집행 등 모든 과정에 참여하며 기획과 조언, 감독을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부산시, 부산항만공사, 기초단체장 등이 참여하는 자치단체 협의회도 가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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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는 북항 재개발사업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고자 힘을 쏟고 있다. 원도심 도시재생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공동으로 ‘부산항 북항 통합개발 연계 도심재창조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을 추진 중이다. 2030년 세계등록엑스포를 부산 북항 재개발 2단계 구역에 유치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2.1㎞를 운행하는 트램을 추진하는 등 교통 인프라 확충에도 열심이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1단계가 완공되면 경제적 효과 31조원과 고용효과 12만명, 2단계가 완공되면 생산유발효과 2조6000억원과 고용효과 1만3000여명을 기대한다. 부산 북항 통합개발과 연계한 원도심 활성화는 부산을 통째로 바꾸는 부산 대개조 프로젝트의 견인차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시설보다 콘텐츠다. 세계 제1의 무역항이었다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던 영국 리버풀항은 특화된 문화프로그램으로 연간 10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항만재생은 항만의 역사 알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항만의 역사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어떤 좋은 개발 아이템도 생명력이 짧거나 왜곡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크루즈 활성화도 한 방안으로 떠오른다. 1990년대 재생에 성공한 바르셀로나항처럼 부산 북항에도 대형 크루즈가 취항하는 시설을 만들어 외국 관광객들이 부산에 머물며 돈을 쓰도록 만들 수 있다.

정성기 부산 북항 통합개발 추진단장은 “1단계 북항 재개발이 2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24시간 사람이 모이도록 하는 콘텐츠 계획이 없다. 부산 북항을 신성장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선 자치단체가 교통·행정·문화 등 모든 분야에 집중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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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을 상징하는 앵커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주요 항만들은 상징물(랜드마크)이 있다. 독일 뒤셀도르프 메디언하펜항은 라인타워, 바르셀로나항은 세계무역센터, 빌바오항은 구겐하임미술관 등이다. 일부 상공인들은 카지노를 갖춘 복합리조트를 희망하고 있지만 도박 도시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도 있다.

부산 북항 재개발 라운드테이블 운영위원장을 지낸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는 “세계의 오래된 항만은 재개발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흔적이 느껴지게 하는 재생이 흐름이다. 부산 북항에 역사가 흐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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