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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만물상] 신종 비즈니스 '세금 빼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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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사는 프랑스 은퇴자 100여만 명은 매년 주소지 구청이나 현지 프랑스 대사관에서 '생존 증명서'를 발급받아 본국 연금공단으로 보낸다. 10여년 전 연금 적자액이 100억유로(약 13조원)를 돌파하자, 프랑스 정부가 연금 새는 구멍을 막겠다고 '생존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해외 연금 수급자 가족들이 연금 수령자가 죽어도 신고하지 않고 계속 연금을 받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작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은 '연금 기생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서로 남남인 남녀노소가 연금 생활자인 할머니 한 명에게 빌붙어 생계를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에선 부모 연금에 기대어 사는 자식이 1000만 명에 달해 '연금 패러사이트(parasite·기생충)'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 중엔 부모가 죽어도 사망신고를 안 하고 계속 연금을 타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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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원조 복지 국가, 영국에서도 연금 부정 수급 비율이 5%가 넘는다. 100원을 지출하면 5원은 엉뚱한 곳으로 샌다는 뜻이다. 시민 의식과 도덕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스웨덴에서도 복지 지출의 1.5% 정도는 부정 수급자 몫이다. 전 국민에게 일정 소득을 그냥 주자는 '기본소득' 구상도 '줄줄 새는 복지'에 대한 고민과 관련이 있다. 고령화와 더불어 각종 복지 항목이 늘어나면서 전달 비용이 폭증하고, 부정 수급자가 많아지자 이럴 바엔 '기본소득'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세금 빼먹기'가 신종 비즈니스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 취업 청년에게 최대 3000만원의 목돈을 제공하는 복지 제도(내일채움공제)를 도입하자, 전체 지원금 수급자의 14%가 기업 오너, 대주주, 임원의 자녀, 배우자 등 친인척인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 채용 기업에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자, 기존 직원, 친·인척을 신규 채용 직원으로 둔갑시켜 세금을 빼먹고 있다. 각종 수법을 전수하고 커미션을 받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정부가 현금 살포 복지를 크게 늘리면서 부정 수급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정부가 적발한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는 12만여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배로 늘었다. 적발된 부정 수급 금액은 1854억원. 정부 보조금 총액(124조4000억원)의 0.15% 수준이다. 과연 이것뿐일까. 우리 도덕 수준이 스웨덴보다 10배 높은 걸까. 아닐 것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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