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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일사일언] 닭도 울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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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꼬끼오~ 잠결에 들은 닭 울음소리가 꿈인가 싶었다. 뒤척이며 잠을 청해 보는데 다시 우렁차게 꼬끼오~! 마치 나 여기 있소 외치는 것 같다.

며칠 전부터 닭 울음소리에 잠이 깬다. 시계를 보니 6시, 정확하기도 하지. 덕분에 7시에 맞춰 놓은 알람 시계가 무색하게 기상이 한 시간 빨라졌다. 피곤한 직장인의 아침잠을 설치게 하는 수탉이 원망스럽기보다는 도시의 소음을 무찌르는 그 시원한 울음소리가 반갑기만 하다. 슬그머니 웃음까지 난다.

가까이에 왕릉으로 이어지는 숲이 감싸는 마을인지라 큰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고층 아파트 단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여름에 창문을 열면 아카시아 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집 안까지 퍼지고, 겨울 창밖은 키 큰 소나무에 쌓인 눈 풍경이 꽤 근사하다. 한참이나 비워져 있던 집 앞 공터는 누가 애써 가꾸어 놓았는지 큼직한 고추가 붉게 익어가고 있고 실하게 여문 호박도 보인다. 가끔 퇴근길에 슬쩍 한 두어 개 서리를 해서 된장찌개에 넣어 끓여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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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옆에는 '하루'라는 명패를 어엿하게 단 백구 집도 있다. 오다가다 고기도 썰어다 주고, 하루가 제일 좋아하는 우유도 사다 주었더니 내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 두 발로 겅중겅중 뛰어오르며 꼬리가 떨어져 나가도록 흔들면서 반긴다. 그런데 녀석을 본 지 1년이 넘도록 도통 짖을 줄 모른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조차 들은 적이 없다. 이상하다 싶어 주인에게 물었더니 키우다 버린 개를 데려와서 그런지 제 살길을 찾아 짖지도 않고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한다. 개는 짖는 게 본능일진대 또 버려질까 무서워 목소리도 내지 않다니, 불쌍하기도 하지.

얼마 전 프랑스 한 농촌에서 아침마다 울어대는 옆집 수탉이 시끄럽다며 노부부가 소송을 건 일이 있었다. 법원의 판결은 '닭은 울 권리가 있다'. 그래, 꼬끼오 울어야 닭이고, 멍멍 짖어야 개인 법. 그 자연의 섭리마저 마음대로 바꾸려 하는 인간들이 어리석지.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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