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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100년전 악녀 딱지 '헤다'는 "욕망에 충실한 인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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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헤다 가블러' 장은실 연출 인터뷰

연합뉴스

인터뷰하는 장은실 연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연극 '헤다가블러'의 장은실 연출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10.8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100년 전 쓰인 희곡 '헤다 가블러'의 주인공 헤다는 초연 당시 희대의 악녀라는 평을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제가 볼 때 헤다는 자기 자신의 행복이 제일 중요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지난달 25일부터 열리는 올해 제14회 여성연출가전이 반짝이는 신인 연출가의 탄생을 알렸다. 지난 6일 폐막한 연극 '헤다 가블러'를 연출한 장은실(28) 연출은 헤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지난 7일 만난 그는 자신의 첫 연출작으로 '헤다 가블러'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세 자매 중 첫째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연극에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많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면서 "내가 가장 잘 아는, 잘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얘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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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헤다가블러'의 장은실 연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연극 '헤다가블러'의 장은실 연출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8 ryousanta@yna.co.kr



그의 얘기처럼 '헤다 가블러'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인형의 집' 등을 쓴 노르웨이 문호 헨릭 입센의 작품으로 1891년 독일에서 초연됐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공 헤다가 옛 연인을 만나게 되면서 겪는 이틀간의 일을 담는다. 초연 당시 헤다는 '악녀'의 대명사로 통했다. 자기 욕망을 위해 주위 사람들을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자신마저 극단적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은실은 악녀 프레임에 갇힌 헤다를 2019년의 관점으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제가 그리고 싶었던 헤다는 가장 행복하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남편을 따라 성을 '테스만'으로 바꾸지 않고 '가블러'로 살아가죠.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나라는 사람 자체로 살아가려는 사람, 그게 제가 해석한 헤다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이런 헤다가 2019년을 살아가는 여성들과 닮은 지점이 있다고 했다.

"헤다는 결혼과 임신·출산 압박에 고민해요. 지금의 여성들이 고민하는 것과 같죠."

장은실은 "여성연출가전에서 첫 작품을 하게 돼 매우 영광"이라면서 "여성이 연출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대됐다"며 웃었다.

"최근 여성 서사에 관심이 커진 건 과거에 비해 여성의 입지가 달라진 데다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시대가 됐기 때문 아닐까요? 남성이 주인공인 작품은 너무나 많잖아요. 주인공이 여성인 연극을 수많은 여성이 찾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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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장은실 연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연극 '헤다가블러'의 장은실 연출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10.8 ryousanta@yna.co.kr



그러나 장은실은 관객들이 '인간'이라는 큰 주제에 주목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가 속한 극단인 '팀 도트'(Team D.O.T)는 장은실 본인을 빼면 모두 남성으로 구성된다. 팀 도트는 장은실이 석사 과정 중인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만든 극단으로, 장은실을 캐스팅해 데려왔다. 팀원들은 연극과 캐릭터를 끊임없이 토론한다.

팀원들이 '헤다 가블러'의 배우로 참여하게 되면서 토론은 더 깊어졌다. 장은실은 작업하면서 이 연극이 여성에게만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 '인류'잖아요. 남성을 차별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마음으로 연극을 만들지 않아요. 크게 보면 저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여성 헤다가 아니라 그저 '인간 헤다'로 그를 바라봐주면 좋겠습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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